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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21. 2020

연기 같은 사람

2019. 11. 10(일)

얼마 전 합정에 위치한 전시장 '탈영역 우정국'에 다녀왔다. 개인전 중인 A 작가님의 작업을 처음 보았던 건 2년 전쯤이었나, 그분의 졸업작품전에 갔을 때였다. 미대의 모든 과중에 그분의 작업만 유독 기억에 남았고, A 작가님의 개인전은 처음이라 꼭 가보고 싶었다.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전시 관람 시간을 사전에 신청받았고, 관람시간에는 30분가량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이전보다 발전된, 여전히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흥미로운 영상이었는데, 전시 관람을 방해하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 의자 없이 30분 동안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 힘에 부치더라는 것. 바닥에 앉아서 볼까... 하고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끝까지 참긴 했지만. 2년 전, A 작가님의 전시를 처음 보았던 날엔 그 학교 전체 학과의 전시를 보겠다는 의지로 넓디넓은 캠퍼스를 다 돌았음에도 몸에 무리가 없었는데(함께 갔던 친구 K는 점점 말수가 줄었었다... 미안했다, 친구야.) 이 정도의 상황에서 피로감을 느낄 줄은 몰랐다. 몸이 전보다 많이 무거워지긴 한 모양이다.



전시장에 대한 경험을 떠올려보니, 지난달에 다른 전시장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린 B작가님의 오픈 파티에 갔던 일도 생각났다. 반려견 포카와 산책을 나갔다가 자연히 세검정 쪽으로 걸음을 하게 되었고, 전시 오픈 파티 날인지 모르고 전시장에 방문하게 되었다. 초대 손님이 있는 파티이긴 했지만, 마침 전시장이 열려 있어서 나는 포카를 전시장 야외 구석에 잠시 묶어두고 보고 싶었던 전시를 서둘러 보고 나왔다. 우리는 집에서부터 한 시간 남짓 걸어온 터라 포카를 잠시 쉬게 할 겸 전시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픈 파티에는 예술가들이 많았고, 그런 분위기답게 흡연자들도 많았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중 몇몇이 포카를 발견하고는 개를 구경한다며 손에 담배를 든 채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개가 있건 없건, 내가 비흡연자이건 말건, 일말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남성 작가(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포카도 나도 담배연기를 맡아서 좋을게 하등 없었기에 우리는 그들을 피해 더 구석 쪽으로 들어가 계단에 앉아 쉬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큐레이터로 보이는 여성 몇몇이 서있었는데, 어쩐지 그 무리들을 계속 살피게 되었다. 그녀들은 그들과 같이 맞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의 담배연기를 견디고 있었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겉으로 티 나지 않는 임산부라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게 몸이 건강한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임산부입니다. 담배는 멀리서 피워주세요’ 혹은 '몸이 힘드니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부탁의 말을 전하기엔 나는 그 파티에 초대된 사람이 아니라서, 또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서 용기가 선뜻 생기지 않았다. 임신 초기에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내가 임산부임을 알리는 것이 크게 부담되어 임산부 태그를 집에 두고 다녔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곳에라도 임산부가 있음을, 한껏 티를 내며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어디에 가던지 임산부 태그를 꼭 달고 다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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