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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07. 2020

천천히 걸으면 되니까 괜찮아

2019. 11. 26(화)

작업실이 있는 남가좌동에서 홍대나 합정 방향으로 가려면 대림시장 버스정류장에서 7612번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버스는 인근의 명지대학교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노선이라서 언제나 붐빈다. 7612번에서는 임산부 태그를 달고 있어도 자리를 양보받은 적이 없다. 벌써 '요즘의 젊은이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나이는 절대로 아니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많이 피곤하니까 그러려니 할 수밖에.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를 노린다면 자리에 앉아서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려야 하는 정류장까지 서서 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 노선을 다니는 버스의 수가 이용객 대비 적은 편이라, 버스에 탈 수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한 날도 많다.



오늘은 퇴근하고, 떨어진 재료를 사러 홍대에 가야 했다. 마침 정류장에 7612 버스가 도착하길래 열심히(달리진 못하고, 나름 빨리) 걸었는데 버스는 무심하게도 코 앞에서 떠나버렸다. 몸이 무거워지니까 이 정도의 가까운 거리도 속력을 내는 게 무리이구나 싶고, 또 배에 무리가 갈까 봐 선뜻 달리지 못하는 마음이 생긴 것에 조금 우울해졌다. 예전에 우리 언니는 임신하고 막달이 되었을 때, 지하철 플랫폼에 열차가 도착했는데 순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바람에 지하철을 눈 앞에서 보낸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나는 임신 초기에 그 말을 듣고, '에이... 한 발 디디는 게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워진다고?' 싶었는데, 나도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날을 겪어보니 이해가 되더라.



내일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생각이다. 책을 여러 권 빌리고 싶기도 하고, 걷기 편하게 백팩을 메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걸음이 느려졌다고 속상해하지 않을 거다. 버스는 기다리면 또 올 거고, 천천히 걸으면 되니까.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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