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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씬날 Apr 08. 2019

내가 쓰는 스얼레터 #14

처음과 다음, 그리고 또 다음의 나

저는 가끔 지난날을 돌아다보며 "내가 그때 그걸 어떻게 했지?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와 같은 이야기들을 종종 하곤 합니다. 20대 초반 멋모르고 떠났던 허술했던 배낭여행의 기억이나 등산화도 신지 않고 올랐던 지리산 종주의 기억 같은 것들이요.


보통 처음 하는 일에는 기대 수준이 낮습니다. 조금 어설프고 부족해도 처음이니까 하면서 위로하고 마음을 다독이죠. 이번엔 처음이었으니까 다음번에 개선해야 할 점을 찾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살려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이 일이 익숙해질 때쯤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제 나 좀 할 줄 아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을 때 보통 실수를 저지르게 되거나 무언가를 놓치게 됩니다. 그때는 내가 가진 것보다 목표치를 높게 잡기 때문에 좌절도 많이 하고 자괴감도 많이 느끼게 되죠. '난 아직 멀었구나' 하면서요.


저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소위 몇 년 짬이 쌓이면 '이것쯤은' 하면서 처음보다는 쉬워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일은 더 어려워지더라고요. 분명히 많이 해봤고 많이 알면 더 쉬워야 하는데 더 어려웠어요. 내가 몇 번 해봤다는 이유로 어떤 과정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 해보는 동료들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처음이라 여러 번 돌아보고 반복했던 일들을 지금은 소홀히 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어느덧 4번째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을 준비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2016년에 처음 겪은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은 한 부분만을 돕는 수준이었고, 두 번째는 담당 PM으로 준비하며 '그냥 제발 무사히만 치르자'라고 생각했죠.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가 될수록 이상하게 더 부족한 것 같고 조급해졌습니다. 왜 나는 지금껏 이것도 맘 편히 치르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까 자책하기도 했죠.


하지만 올해 실밸을 치르고 나니 작년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내가 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 할 때의 설렘은 부족하지만 더 많이 둘러볼 시야가 생겼고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이 보여서 처음만큼 불안하고 어려웠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번에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그렇게 그렇게 많은 분들과 함께 또 하나를 끝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하나를 끝내고 또 다른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 나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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