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을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뜻을 세운 건 3년 전 봄이었다.
그때 나는 겉보기와 달리 만신창이였다.
실패자,
폐허에 서 있는 느낌.
뭔가를 지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허망하게
무너지고 내려앉은 폐허.
제대로 지어보지도 못하고
엉망진창이 된
나의 꿈. 나의 희망.
다 망했다.
인간관계도, 돈도, 일도
모두다.
물론 결정타는 있었다.
스모킹건.
대개의 결혼생활이 그렇듯, 스모킹건은 남편이었다.
3년 전 봄 남편이 한 눈을 팔았고
내 촉은 그 즉시 알아챘다.
어마무시한 적개심, 분노, 배신감, 미움, 수치심이 터져나왔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스모킹 건은
내 안에 깊이 봉인되어 있던 판도라 상자,
죽을 것 같은 트라우마와
심리적 아킬레스건을 겨냥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이 없어.’
‘이제 나에겐 아무도 없어,’
‘나를 버렸어.’
만으로 2살 때 동생이 태어났고
나는 엄마를 잃었다.
동생 트라우마.
동생이 태어나던 날
엄마와 아빠는 외할머니께 자고 있는 나를 부탁했고
외할머니가 집에 도착하기 전 잠이 깬 두 살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처절하게 엄마를 찾아 헤매었다.
외할머니가 집에 도착했을 때 80년대 브라운관 TV를 비롯해
두 살의 손에 닿을 만한 물건들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있었고
두 살은 콧물 눈물범벅으로 새빨갛다 못해 시퍼렇게 깔딱 넘어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미웠을까.
2살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어마무시한 그 감정덩어리는
1차적으로는 판도라 상자에 봉인되어 접근 금지가 되었고
2차적으로는 대인관계 패턴, 일 처리 방식, 강점과 단점에도
영향을 주며 버젓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30대가 끝나가던 봄
남편의 외도 덕분에
내 무의식 저 밑바닥에 묻혀있던
판도라 상자가 봉인 해제 되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세상’을 제대로 마주해야했다.
붙잡을 것이 필요했다.
들끓고 뒤집힌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20대 초반에 만났던 심리상담사 S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다시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했다.
tip. 누구에게나 심리적 아킬레스건이 있다.
아킬레스건은 발목 뒤에 붙은 매우 작은 근육이지만
아킬레스건을 치면 건장한 사람도 한 순간에 넘어질 수 있다.
심리적 아킬레스건이 건드려졌을 경우 대개 혼자서 일어서기 어렵다.
나보다 앞서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치유해본 이를 만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치유는 내가 하는 거다.
그래서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거다. 엄청 엄청 엄~~청 친절해야한다.
자신에게 친절할 수 없거나 자신에게 친절한 게 뭔지 감조차 오지 않는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를 세심하고 친절하게 대해줄 누군가를 꼭 만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