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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Nov 05. 2023

처음 만나는 바다

관을 빼다

치료가 끝났다.


2차 이식을 마치고

소아 백혈병 재단에서 주는 치료 종결 메달과

교수님의 애정어린 메세지가 써있는 카드도 받았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채혈을 해서

은우의 백혈구들이 잘 살아나고 있는지, 혈소판들은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는지 체크하고,

세 달에 한 번은 MRI 를 찍어 재발 여부를 확인하는 일정이라, 치료할 때와 비슷한 빈도로 병원을 다녀야 했다.

아이의 치료는 끝이라는게 없어보였다.


가장 힘들고 불편한 것은 중심 정맥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비닐로 밴드로 칭칭 감고 가볍게 샤워만 해야했기 때문에

물놀이나 수영은 꿈도 못꾸었고,

밤에 잘 때도 수시로 관이 빠져나오진 않았는지, 고정 밴드는 잘 붙어있는지를 확인해야했다.

어른들이 이쁘다고 번쩍 겨드랑이를 잡고 안아 올리실 때도

정맥관이 쑥 빠져나올까봐 늘 노심초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관의 상태가 너무 안좋은게 내 눈에도 보여서

종결 후 2개월 진료를 보러갔을 때 교수님께 보여드렸다.


- 교수님, 은우 관이 좀 많이 삐져나와서요, 괜찮을까요?

   은우가 잘 때도 엎드려자고, 워낙 운동량이 많고 활발해서요. 더 빠질까봐 불안하네요.


치료 후에도 관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주 채혈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는데, 아기라 팔에서 직접 채혈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 기왕이면 오래 유지하곤 한다고 했다.


은우의 관 상태를 보신 교수님은 잠깐 생각하시더니,


- 관 뺍시다.


하셨다.

우와!!!!!!!!!!!!!!!!!!!!!!!!

관을 뺀다니!!!!!!!!!!!!!!!!!!


- 채혈 등 할 때 불편하겠지만 지금은 관이 감염될 리스크가 더 크니 제거하도록 하고, 수술 날짜는 밖에서 예약하고 가세요.


그것도 수술이구나....

기쁘던 마음이 살짝 흐려졌다.


교수님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 선생님과 수술날짜를 잡으면서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 선생님 근데, 이 수술하면 전날 입원하고 며칠 더 있어야하고 그런거에요???


처음 진단받고 뇌수술을 했던 그 때가 생각나며

내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게 느껴졌다.


- 어머니, 아니구요, 오전에 와서 수술하시고 오후에 귀가하시는 일정이에요.  수술 자체는 15분 정도면 끝나는데, 마취 진정해야 하다 보니 완전히 깨어나는 시간을 4시간 정도 잡고, 오전 9시쯤 수술하시면 3시나 4시 경에는 귀가할 수 있으실거에요.


- 아 네, 그렇구나...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잡아주세요!


그렇게 은우의 중심정맥관 제거수술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남편이 데리고 수술을 잘 하고 왔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관이 있던 자리를 보니, 1년 넘게 덜렁덜렁 달려있던 두 줄기의 관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심지어 꼬맨 자국도 없이, 강력 접착제로 찝어놓은 절개부위가 보였다.


- 여보, 이게 모야?? 꼬매지도 않았네? 이렇게 해도 된대??

- 어, 신기하지??실밥 뽑을 필요도 없대. 그냥 붙여놓은거라 막 일부러 벌리려고 하지 않으면 이대로 잘 아문다고 하네.


의학의 발전이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은우도 한결 개운한지 밤에 잠도 잘자고,

소파를 오르내리며 가슴이 쓸릴 때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게 나에겐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상처가 잘 아문지 두 달 후,

우리는 동생네 가족과 함께 바다로 갔다.


은우는 처음 만나는 바다였다.

집 욕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은우였으니,

모래와 파도와 끈적이는 바닷물에 아이를 노출시킨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거대한 공간을 향해

마구 달려가는 은우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항암을 하면 안그래도 감염관리가 중요한데

하필 코로나까지 터져 정말 집과 병원만 오갔던 은우.


그 아이가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이라니.


은우야,

이게 너의 세상이야.


이렇게

크고 넓고

아름다워.


한 발 한 발

이제 잘 나아가 봐.


그동안 정말

너무 너무 고생했어.


사랑한다.

나의

작은 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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