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살다 Nov 12. 2023

벌써, 1년

1년 검사, 그 대장정

마지막 치료를 마치고 집에 온지 1주일밖에 안되었는데

대상포진성 수포가 올라와 다시 입원해야 했던 그 때,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입원이라니.

정녕 끝은 어디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다시 병실로 들어가면 울며불며 자지러지게 싫어하지 않을까 했는데 왠 걸,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환복을 하고 침대위에 자리를 잡고

생글생글 웃는 것이었다.

복잡한 마음이었다.


- 역시 어른들이 제일 문제인 건가.

- 그래도 병원에서의 기억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았구나. 다행이다. 정말 정말.


2주는 격리병실에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1인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했지만

호캉스 (호스피탈 바캉스) 라고 생각하자! 고 마음먹으니 또 나름대로 견딜만 했다.

멸균 환경에서 2주를 있으니 내가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달까.


이 기간에, 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회진 오신 교수님께 최대한 많은 질문을 드렸다.  치료 기간 중에는 사소하다고 느꼈던 질문들은 그냥 삼키고 말았었지만,

이제 은우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마지막으로 하나하나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많은 답들 중 하나는,


- 치료 후 1년 내 재발할 가능성이 높으니 1년동안 잘 지내면 아마 괜찮을 거에요.


였다.


1년!


아직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 1년만 버텨보자!!!

1년.


시간이 흐르고 정기진료를 보러 갔을 때 교수님이 1년 검사 예약을 잡아주셨다.


- 해야될 검사가 많아서, 밖에서 예약 다 하고 가세요.


스테이션에 계신 세상 유능한 간호사 선생님이 은우의 검사 예약을 잡아주시는데, 세상에, 검사의 종류가 15건이었다.


15건의 검사라니!


거의 아이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스캔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항암제의 독성과 부작용이 강하여 뇌나 척추는 물론, 내장기관부터 시청각 감각까지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었다.


MRI 머리, MRI 척추 2건의 검사 일자가 잡혔다.

수면마취를 해야하니 하루에 다 찍으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오래 촬영하려면 마취제를 많이 써야하는데 은우 나이에는 그렇게 많이 쓸 수 없어 부득이하게 나누어서 촬영해야 한다고 하셨다.


수면 마취를 하는 날은 아이도 힘들고 휴식이 필요해

다른 검사를 잡을 수가 없었고,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심전도, 복부초음파, 엑스레이, 채혈, 채뇨 가 하루에 잡혔다.


CT 촬영도 포크랄을 먹고 촬영해야 해서 별도 하루로 날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가장 쉬워보였지만 3세 아이에게는 정말 힘들었던 시력, 청력 검사 일정이 잡혔다. 그 날, 정신의학과에서 진행하는 발달 검사도 했고, 치과도 들렀었다.


예약 잡기가 가장 어려운 것은 왜 인지, 심장 초음파였다.

특히 소아 심장 초음파는, 아이가 한 번이라도 깡 울어버리면 심장의 움직임이 달라져서 다른 날 다시 잡아야 하는 민감성이 있다보니 예약이 많이 몰리는 듯 했다.


그리하여 총 6일에 걸쳐, 은우의 1년 검사 일정표가 나왔다.

검사하는 장소는 내용이 다른 만큼 모두 달랐다.

이 큰 병원을 종횡무진하며,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검사들을 하나 하나 치러나갔다.


검사가 많이 몰렸던 시력 청력 검사 날,

아직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나이다 보니

들리면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는 청력 검사를 하지 못했다.

청력 검사 실 안에 큰 바구니가 있고,

그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과일 모형이.있었다.


은우에게 헤드셋을 씌우고 나서, 검사 선생님이 말했다.


- 은우야, 귀에서 소리가 들리면, 과일을 바구니에 넣는거야, 알았지?

- .......


은우는 그야말로 은우둥절한 표정으로 과일 모형들을 관찰할 뿐이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도록 바구니에 넣지를 않는 것이다.


- 은우야, 삐 소리 안들려? 삐----

- ??????


선생님들의 고군분투였다.

집에서 생활할 때는 부르면 바로 반응했기에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말씀드려도, 일단 검사를 하게되면 검사지에 데이터로 결과가 나와야 했기에

두 명의 선생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저 이 상황이 무언지 멍 때리고 있는 은우를 이해시키기에 바빴다.


- 은우야? 삐- 하면 과일을 바구니에 쏙-

- 안 들려? 지금 안 들렸어?

- 들려.

- 그럼 바구니에 넣어야지.

- 이렇게?

- 아니아니, 다시 해보자~


그렇게 거의 한 시간 동안

과일을 이 바구니에서 저 바구니로 넣었다 쏟았다 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1년 검사 중 최악이었던 시력 검사!!!

가벼운 마음으로 안과로 향한 우리는

수많은 대기 환자들 (주로 눈병이나 백내장 등을 검사하러 온 어르신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오랜 대기시간을 버텨야했다.


- 정은우~

- 네 여기요

- 아....1년 검사시네요? 산동제 언제 넣으셨어요?

- 산동제요? 안 넣었는데요?

- 아...산동제 넣으셔야 검사 가능하세요~ 지금 넣고 40분 정도 있으셔야 동공이 제대로 산동되어서 검사 가능합니다.

- 아니.. 그런 안내가 없었는데요. 미리 알려주셔야 준비할텐데.. 지금도 많이 기다렸는데 또 40분을 기다려요??

- 네... 어머니 산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동공이 확대가 안되어서 검사 못하세요. 다시 잡으셔야 해요.



으악.


그 때만해도 기저귀차고 이유식 먹는 나이라

짐도 많고 시간대별로 챙겨야 하는 것도 많던 나의 인내심이 경계에 다다른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 것은 그 때 어머니가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망할 놈의 산동제를 넣어야 한다고 하니,

눈을 꽉 감으며 울며불며 거부하는 은우를 꼭 잡고 두방울 씩 넣은 다음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 어머니,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요.


인산인해의 안과 대기실에서 벗어나 편의점으로 가 감자깡을 샀다. 그리고 시원한 아이스라떼도 샀다.

폭발할 것 같던 마음이 조금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 독하고 힘든 치료도 잘 버텼는데

이게 뭐라고.


괜찮아.

이렇게까지 화날 건 아니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산동제 때문에 불편해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돌아갔다.



- 은우야~~~ 엄마가 과자사왔지롱~!!!


감자깡은 은우가 치료 중에도 가장 좋아했던 과자 중 하나였다. 크기가 작고 길쭉해서 종이컵에 조금씩 담아주면 아기가 작은 손 작은 입으로 먹기에 적당했다.

그리고, 나도 좋아했다!^^ 남은 과자는 내 차지였다.


익숙한 과자의 맛에

은우는 이내 잠잠해지고

아작 아작 과자먹는 소리만 났다.


모든 사람이 아이들만큼 단순하고 명확하면 좋을텐데.

싫으면 울고, 과자를 주면 이내 잠잠해지고.


나도 가끔 그냥 이렇게

심플하게 살고 싶어진다.

한순간 한순간만 생각하면서.



준비시간 대기시간 동안의 고군분투가 허망하게도

안과 검사 자체는 금방 끝났다.

은우도  선생님이 쳐다보라는 빛을 차분히 잘 바라보았다.

온 몸이 땀에 젖어 기진맥진.


와,


몇 개 남았지?



가장 오랜 시간 진이 빠졌던 검사는 발달 검사였다.

정신의학과에서, 2시간 반~ 3시간에 걸쳐

아이의 운동 능력, 감정과 언어 표현 능력 등을 전반적으로 검사한다. 검사 전 작성해야 하는 설문지도 엄청 두꺼웠고 자세했다.


 예를 들면,


- 아이가 사용하는 단어는 총 몇 개인가요?

-  .....몇 개 더라???


아이에 대해 24시간 초밀착 관리를 하며 기록하지 않는 한

어떻게 갯수까지 기억한단 말인가.


최선을 다해서 작성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다양한 장난감, 교구,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꽤 넓게 확보되어있었다.


몇 번 가 본 키즈카페가 떠오르는지, 은우는 기분이 좋은 듯 했다.



- 은우야 안녕~~~


젊은 남자 교수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은우에게 다양한 질문을 친절한 표정으로 물으며 손가락은 바쁘게 기록하기 시작하셨다. 아이에게 묻고 답하는 동시에 나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그 와중에 의자를 이탈하는 아이를 잡으려고 했더니, 그냥 두라고 하신다.


- 은우야, 계단도 올라갈 수 있어?


작은 3 스텝 정도 되는 계단이 놓여있었다.

은우는 손잡이 없이 그 계단을 올라간 후 교수님을 바라본다.


- 우와 잘했어! 그럼 이제 내려와 볼까? 조심하고~


계단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내려오는 것은 겁이 덜컥났다.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지르거나, 바닥에 무릎을 찢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플레이되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였다.


잡아줘야하나?



그러나 은우는 천천히 주의를 기울이며

한 칸 씩 계단을 잘, 무사히 내려왔다.


기특한 녀석!!!



이제 계단을 오르내릴 때 혼자서 해보도록 놔두어야지.


계단 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혼자서 해보도록.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스스로 해보도록 놔두어보자.



그러면서 배우겠지.

그러면서 자라겠지.


교수님이 작성해야 하는 항목은 끝이 없는지

마무리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거의 책상에 엎드릴만큼 진이 빠져서야 검사는 끝이 났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적으셨는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성대하게(?) 마친 1년 검사의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머리칼이 쭈뼛 서고

안절부절 못하는 긴장 상태.


- 네, 1년 검사 MRI 잘 나왔구요,

   다른 검사도 큰 이상 없이, 잘 나왔습니다.


!!!!!

정말 정말 정말 다행이다 ㅠㅠㅠㅠ


좋은 소식에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싱글벙글하고 있는 내 얼굴을 안경너머로 지켜보던 교수님은 흥분 상태인 나의 마음에 찬 물을 끼얹기 시작하셨다.


- 자, 이제 집에서 관리를 잘 해줘야 됩니다.

-.... 무슨 관리요?



그동안 고생했다, 이대로만 자라다오, 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던 나는, 또 다시 숙제를 주시려는 교수님의 눈을 반항적으로 쳐다보았다.


또 뭐냐구요!


- 항암 치료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비만,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걸리기가 훨씬 쉬운 걸로 연구가 되었습니다. 은우는 항상 운동을 쉬지말고 해서 비만하지 않도록 해야하고 식단도 기름기 많은 음식 등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그렇구나.


교수님은 다시 한 번 커다란 메모지에

예의 그 명필을 자랑하시며 꼼꼼하게 그래프를 그리고

주의사항을 적어내려가셨다.

마치,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이 양반아. 라고

말씀하시는 듯 했다.


흥,

그래도 기뻐할 거거든요!

좋은 소식에 맘껏 행복해할 거거든요!


메모지를 접어 가방에 소중히 넣고


- 감사합니다 교수님.


진심을 담아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1년 검사 결과가 좋다고 해도

4개월마다 MRI 는 계속 찍고,

교수님도 2개월마다 만나 피검사 결과를 리뷰해야 했다.



와,


그래도 정말

이만하길 다행이야.


그렇지?

그렇지 은우야?

그렇지 여보?


나는 은우를 안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걸어가 시동을 걸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 여보~!! 은우 검사 결과 다 좋대~~ MRI 도 잘 나왔구 다른 내장이나 발달검사도 이상없대~~~


- 아휴.....너무 다행이다. 고생했어요 여보~~~


- 자기두 고생많았어~~~ 인제 집에 갈께!!!!


- 응~ 이따 집에서 봐~




1년 검사.

막막해보이던 15건의 검사를 우리는 이렇게 마쳤다.


은우야,

뭐가 또 다가오든

우리 같이 잘 해보자!

고생했다 기요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