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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Nov 19. 2023

오늘 편의점에서 그 엄마가 생각났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당이 떨어지는 시간이 찾아와

지하 1층 편의점을 갔다.


어떤 달달구리를 먹을까 신중히 둘러보던 중

허쉬 초콜렛 블루베리 맛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쿵. 하며 마음이 살짝 내려 앉았다.


지훈이 엄마가 나눠주었던 초콜렛이었던 것이다.


이식방에서 만난 그녀는 나보다 훨씬 어리고(어려보이고, 피부를 보면 안다!) 미인에 키도 늘씬했다.

미인답지 않게 사교성도 좋아서, 병실 앞을 지나치게 될 때마다 눈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로 서로를 위로해주곤 했었다.


일주일을 꼬박, 밤이고 새벽이고 우리 병실 앞을 오가던 때에는,


- 잠도 못 자고 어떡해요...아이가 많이 힘들어해요?

- 네, 아니 설사를 끊임없이 하네요... 은우는 많이 없나요?

- 있긴 한데 그래도 두 세시간에 한 번 씩 갈아주고 있어요.

- 그정도면 정말 괜찮은 편이네요. 아휴...


그녀는 눈 인사를 하고 이내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이식방에는 병실 문이 없었고, 두꺼운 비닐 커튼과 정제된 공기 커튼으로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커튼을 사이에 두고 짧게 대화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오후인가, 아이가 조금 진정되어 잠이 들었는지

그녀는 내 병실 앞으로 와 허쉬 초콜렛 블루베리 맛을 두 봉지 건넸다.


- 이거 맛있더라구요.


나도 믹스 커피 3봉지와 초콜렛을 주었다.


- 기운 차릴 땐 이거 만한게 없어요.


그렇게 받았던 허쉬 초콜렛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통원 치료할 때

옆 침대에서 몇 번 들리던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통원 치료실에서도 꼭 침대마다 커튼을 치고 있었다.)

이식방 이 외딴 섬에서 만나다니 반갑기도 하고

이 아이도 이식을 하는구나, 동병상련의 심정이 들기도 했다.


참,

서8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도 병동  앞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쓴 모자가 너무 예뻐서 아이 엄마에게


- 어디서 산 모자에요?? 너무 이뻐요~

   

말을 걸었었는데, 그 아이도 지훈이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항암 치료 하는 아이들은 비니, 볼캡, 두건 등 다양한 모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엄마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다른 아이들이 어떤 모자를 쓰고 있는지 였다.


- 아 이거 그냥 인터넷에서 샀어요. 이름이 뭐더라?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이식이 끝나고, 치료가 종결된 후

정기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였다.


은우의 차례를 기다리며 북적대는 대기실을 오가고 있는데,

누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 은우 어머니 아니에요?

- 어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반가워요~


자주 마주치고 무엇보다 이식방에서 같이 지낸 전우(?)같은 느낌이 들어 활짝 웃으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상큼하게 단발로 컷을 했고, 미모는 더욱 빛났다.


- 어머~ 머리 너무 이쁘게 잘 자르셨네요~

- 아...네....은우 잘 지내지요?

- 네 잘 지내고 있어요~

- ........


어딘가 모르게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싹싹하고 말도 잘 건네던 그녀였는데, 무슨 일일까.


- 지훈이는...이제...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하시네요.

- 네? 교수님이요? 지금 진료 보신거에요?


이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미 한차례 눈물이 지나간 자국이 이제야 보였다.


- 네...그렇게 말씀하시네요...

- 아...그럼 재발이 된거에요?

- ..........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제가 지금 좀 정신이 없네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그녀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식이 끝난지, 치료가 마무리된 지 몇 달 안되었는데 벌써 재발을 해 버린 것이었다.

힘들게 치료를 하면서도, 밤새 한 숨도 못자면서도


- 그래도 이렇게 해서 낫는다면 힘을 내야죠.


했던 그녀였는데...마음 아프게도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얘지고 귓가가 멍멍해졌다.


눈물 가득한 눈으로 사람들 속으로 멀어지는 그녀에게 해줄 한 마디의 말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교수님에게 '이제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구나.


재발이 이렇게 가까운 곳이 있었구나.





심장이 요동치며 멍한 기분이었다.

든 게 끝났다는 생각에 유유자적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를 보러온 나의 뒷통수를 누군가 세게 치고 지나간 듯 했다.



언제쯤 안심이란 걸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안심보다는 평정심을 좆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 저런 걱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사실 우리가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차라리 그래, 평정하자.



그 후로는 그녀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다른 엄마들은 진료 대기실에서 한 두 번씩 우연히 만나게 되었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지 못한 새로운 치료법이 연구되어 또 다른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 있든,

지훈 어머니,

마음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감히 힘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추워지는 날씨에

따뜻하게 입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어요.


다음이라도 우연히 만나면

우리 이야기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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