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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Nov 26. 2023

주사 퍼레이드

벼락치기 예방접종

아이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면

방법은 아래 중 하나인 것 같다.


1. 화제 전환

2. 팩트 설명

3. 두리 뭉술

4. 거짓 대답


은우와 병원을 자주 다니면서

그리고 이제 아이가 말을 잘 하게 되면서

늘 받게 되는 질문이 이거다.


- 은우야, 내일 엄마랑 큰 병원 가자~

- 엄마, 주사 맞아?

- ......


주사를 맞아야 하냐는 질문.

작년만 해도 그저 이끄는 대로 과자먹고 유투브 보며

잘 따라오다가 주사를 맞게 되면 순간 앙 울고 금방 멈추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병원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주사를 맞는지 물어본다.


보통은 1번과 3번의 기술을 써가며 대답해준다.


- 글쎄~ 의사 선생님한테 한번 물어봐야 할거 같은데?

   근데 은우야~ 우리 이번에 병원가면 무슨 밥 먹을까?

   돈까스? 만두국?


- 음....돈까스!!

- 그래! 돈까스 너무너무 맛있더라~~~ 엄마는 커피 마셔야지~~~


이렇게 스르륵 넘어가주면 다행이지만,

아차 방심하는 사이에 팩트를 말해주었다가

아이가 울며 불며 병원안간다고 난리난리를 부리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내가 한 최악의 거짓말은 바로,


- 이번엔 엄마가 맞는데 주사!

   엄마 넘 무서워 ㅠ 은우가 손 꼭 잡아줘?


였다. 그럼 은우는 자신은 아니라는 안심과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그 순간 울음을 그치고 연민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이게 최선일까,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은우와 병원으로 가는 길.

한 달에 한 번 채혈하는 것 외에

엄청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예방접종 다시 하기 였다.


신생아 때부터 돌 때까지 시기별로 맞아온 예방접종을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은우 몸 안의 백신들이 항암 치료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으니

이제 치료가 끝나고 면역체계도 정상으로 돌아온 시점에

BCG 부터 하나 하나 재접종을 해야 했다.


담당 교수님은 은우가 받은 치료 프로그램과 약 리스트를 상세히 들여다보시고 접종 일정표를 뽑아 주셨다.


온통 영어로 된 백신 이름들이었지만

해석해주시는 말씀을 들으니 귀에 익었다.


일본뇌염, 폐구균, 소아마비, a형 간염, b형 간염...


- 이제 매달 오셔서 접종 하셔야 해요.

   초반에는 맞아야 할 백신들이 좀 많아서, 아이가 힘들어할 것 같으면 나누어서 맞아도 되구요, 오시기 힘드시면 한 번에 맞으셔도 됩니다.


예방접종 표를 가지고 동네 소아과에서 접종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큰 치료를 마치고 관리중인 만큼 한 병원에서 계속 접종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병원간, 의사간 얼마나 정보이동이 까다롭고 또 치료 프로세스나 환자/보호자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좀 멀더라도 매달 와서 접종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방이나 맞아야 하는 날이 있었다.


허벅지 양쪽에 하나씩,

그리고 양 팔에 하나씩.


어른인 나도 주사를 맞을 때는 눈을 질끈 감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3살짜리가 주사 4방을 한 번에 맞아야 한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두 번 까지는 울먹거리며 참던 은우도

세 번째부터는 으앙!!!! 하며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소아주사실의 베테랑 간호사님은

아이가 울면 입으로는 온 심정을 다해 달래주시면서

손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움직여 고통을 최소화시켜주셨다.


- 아이구 은우야~~ 미안해~~~ 요거는 조금만 아플거야~

- 은우야 요기 한 번만 꼭 할께~ 아프지~ 선생님 미안~~~



그렇게 주사 폭격을 맞은 은우는 어찌나 서러운지,

주사실을 나온 후에도 한참을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할머니와 같이 온 날은 대기실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에게 다다다 달려가 안기고 훨씬 더 큰 소리로 울었다.


- 으어어어어어어엉!!!!!!

- 아팠어어~!!!!!!!!

- 아이고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 은우 너무 고생했어~

- 은우야, 너무너무 아팠지만, 착한 세균들이 들어가서 나쁜 세균이 오면 물리쳐줄거야.  착한 세균 친구들이 없으면 나중에 더 많이 아플 수도 있어~~ 이제 은우 더 강해진거야!


- .....근데 엄마, 세균이 어디로 들어갔어?(눈물은 아직 떨어지는 중)

- 은우 몸에 피가 다니는 길이 있거든~ 그 길에 넣어주셨어~ 그 길로 들어가려면 구멍을 뚫어야 하거든, 그게 주사야.

- 구멍?

- 응, 주사로 뾰족하게 작은 구멍을 뚫고 거기에 착한 세균들을 넣어주셨지. 그러면 피 길을 따라서 은우 몸 여기저기에 다 퍼지는거야.

- 그럼 착한 세균들이 발가락에도 왔어?

- 발가락에도 가고 손가락에도 갔지~

  은우야 안녕? 우리가 너를 지켜줄께~ 하고 있네?


예방접종을 하는 이유를 최대한 동화같은 스토리로 만들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내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다.

주사실에서도 혹시 이상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병원에서 20분 동안 머물다 가라고 했기 때문에, 겸사 겸사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떡만두국이나 돈까스, 혹은 오므라이스를 시켜서 든든히 먹이고, 나와 어머니는 커피를 한 잔씩 시켜서 오늘의 거사를 무사히 마친 것에 한숨 돌리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주사를 마주했던 은우.


어떤 시기에는 의연하게 접종을 마치고,

- 엄마, 나 안울었어. 용감하지?

했다가,

그 후 몇 달 뒤에는 주사실에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고개를 돌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또 그 다음 달에는, 주사를 잘 맞았으니 선물을 사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엄마의 마음이 약해지는 걸 아는 걸까.

얼마나 무섭고 아플까.


그래도

이렇게 백신을 접종해도 될 정도로 은우가 건강해졌다는 증명인 것 같아 한 편으로는 병원가는 걸음이 가벼웠던 것 같다.


치료를 받을 땐, 매일매일 소독과 마스크와 일회용품으로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원천차단하고, 익히지 않은 음식이나 멸균되지 않은 음료, 과자는 먹지도 못했는데


세상에,

이제 몸 속에 세균을 넣어도 된다니!


이름모를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1년 동안의 예방 접종을 마치는 날, 교수님은

이제 동네 소아과에서 시기에 맞게 독감 예방접종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은우 몸 속의 수많은 백신들아,

잘 자리 잡고, 은우를 더 건강하게 튼튼하게 해줘!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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