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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Dec 17. 2023

복직하던 날

슬리퍼를 벗고 하이힐을 신다

아이의 치료는 10개월이 걸렸다.

처음엔 근 1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거대하고 캄캄한 미지의 터널로 들어가는

막막한 심정이었지만,

3차 치료를 마칠 때 즈음이 되자

어느 정도 간호사 선생님들과 합(?)이 맞아 가고 프로토콜에 익숙해지면서 이대로만 지나가면 되겠다, 생각했다.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두려움과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 고비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은우를 간병하는 것의 나의 일상으로 자리잡아

이제는 좁고 삐걱대는 보호자 침대에서도 숙면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된 순간부터 모든 여인들이 통잠은 포기하고 사는 것 같다. 아기가 아프지 않더라도 밤수유 때문에, 아니면 열이 나서, 그것도 아니면 이불에 쉬를 해서, 갖가지 이유로 엄마들은 자주 깨야하고

또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잠깐이라도 다시 자야하지 않나.


새벽 3시경 채혈을 위해 들르는 간호사 선생님의 방문에 잠이 깨어 은우가 중심관에 연결된 4~5 줄기의 링겔 줄을 배배꼬고 자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혈액이 잘 나올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난 후에는

또 다시 잠을 청해 7시반경 아침 식사 시간까지 자곤 했었다.



매일 매일이 그야말로 빡센(!) 시간이다 보니

항상 제일 편한 옷과 편한 슬리퍼를 맨발로 신고있었다.


왜 맨발인고 하니, 하루 두 번 좌욕을 시키기 위해

(최소 세 번 하라고 하셨지만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ㅠㅠ)

화장실에 폴대를 끌고 들어가 좌욕기를 바닥에 두고 은우를 앉히는 과정에 물이 넘쳐 여기저기 흐르기 때문이었다.  

조금 큰 아이들은 변기에 좌욕기를 두고 할 수 있었지만 은우는 갓 돌 지난 아기라 조심스러웠다.

주렁 주렁 링겔줄을 달고 하의 실종으로 좌욕기에 앉아있던 은우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은우가 거부하고 일어나려고 하거나 옆으로 넘어질까봐, 나는 그 앞에 좌욕기를 잡고 쭈그리고 앉아

이런 저런 동요를 불러주곤 했다.


5곡 정도 부르고 나서 좌욕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면

수건으로 은우의 엉덩이와 다리를 잘 닦아주고

좌욕기 물을 버리고 흥건한 물 바닥도 대충 치우고

폴대를 끌고 미끌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침대로 돌아와

은우를 눕히고 로션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우고

환자복을 갈아 입힌다.


그러고 나서 내 모습을 보면

바지는 무릎 아래로 다 젖어있고,

면티도 여기저기 젖어있곤 했다.

이런 생활에 양말이란 사치였던 것이다.



10개월의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귀환(!)한 후

남편이 바통터치하여 간병휴직을 냈다.

료는 끝났으나 여전히 병원가는 일정이 잦았고

치료 후 6개월은 있어야 보육시설에 갈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긴다고 하셨기 때문에 남편이 6개월 휴직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드디어 복직하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이제 1년 넘게 하지않던 화장을 하고

맨발로 슬리퍼를 신던 발에 구두를 신었다.

신발장을 열어 내가 좋아하는 구두와 샌들들을

하나 하나 꺼내보았다.


- 잘 있구나. 잘 있었구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이어지는 긴 통로를 걸어갔다.


또각! 또각!


내 발 소리가 청량하게 울려퍼졌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제각기 출근하는 뒷모습이

반갑고 정겨웠다.


회사 생활을 15년도 넘게 하다보니

회사가 고향같고, 회사 사람들이 가족같았나보다.


그저 설레고 벅찬 느낌.


큰 전쟁을 치르고 귀향하는 개선장군의 마음과

조금은 같은 결이었던 것 같다.




생과 사가 갈리고

코드 블루와 중증장애, 수술과 중환자실 같은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단어들에 비하면


회사에서 마주하는

매출, 손익, 조직변경, 승진, 고과같은 단어는

너무나 평화로워서 따뜻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토록 안전한 곳이라니!!!

여기는 코드 블루 방송 같은 건

절대 나오지 않는 곳이다.




그렇게 안심한 마음으로 친했던 동료와 차를 마시는데


세상에,


그의 얼굴이 코드 블루였다.



내가 휴직하기 전에도 상사와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그 관계가 더 악화되고 불만감이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안색은 새까맣고, 대화에 아무런 생기나 에너지가 없었다.

병원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불행해 보였다.



이럴 수가 있을까.



- 왜 그렇게 얼굴이 상했어요?? 맘 고생 많이 했나봐요~

- 아...그런가요? 아휴 제가 고생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냥 좀 힘드네요...

- 너무 고통스러울 땐, 이게 죽고 사는 문제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럼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 하하. 그러네요.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죠.



죽고 사는 문제야? 라는 질문이

극단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이 아주 멀리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병문 밖 복도에, 건너편 병실에, 수술실에서

수없이 크고 작은 죽음의 기운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 나는

그 질문이 절대 극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무사히 잠드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 와중에 건강하고, 좋은 성적을 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회사에서도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면?

그 날은 기적같은 날이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사고없는 하루를 보냈다면

그건 기적이다.


일상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 때문에 잠 못드는 밤을 보내고 있나?

그렇다면 한 번 만이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것이 과연 죽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인가?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 할 만한 가치가 있나?

이러느라 오늘 내가 살아있는 기적같은 시간을

의미없이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돈 낭비 물 낭비 에너지 낭비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

인생 낭비인 것 같다.




하루 하루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더 안고 입맞추자.



일상은 특권이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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