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우의 치료를 시작할 무렵, 담당 교수님의 명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검색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전에 찍은 다큐가 있었고, 엄마들의 인터뷰가 몇 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구동성으로 교수님한테 혼났다는 말을 했다.
- 교수님 무서우세요~
- 아우, 또 혼났어요...
의료진에 관한 피드백 치고는 희한했다.
더 의외스러운 것은 그 엄마들의 표정이 모두 밝았다는 것이다.
환하게 웃으면서, 교수님에게 혼났다는 얘기를 한다.
나도 외래 진료를 보면서 몇 번 혼이 났다.
- 아이가 너무 뚱뚱하네요. 달라는 것만 먹이면 안되죠.
- 밖에 나가 뛰어놀게 하세요.
날이 춥다고 감기에 걸리는게 아닙니다. 감기는 사람한테 옮는 거에요.
- 험하게 키우세요. 험하게 키워야 건강해집니다.
엄마들이 왜 웃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치료 중에는 철저한 위생과 감염관리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교수님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감염관리를 해야하는 지에 대해
아무 생각없는 부모 몇 쌍과 함께 (우리 부부 포함)
전문 간호사 선생님에게 3시간 동안이나 교육을 받았었다.
- 나무 도마는 쓰지 마세요.
- 집안의 모든 생물은 박테리아가 나올 수 있으니 모두 치우세요.
- 모든 식기는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소독하세요.
- 아이의 음식을 차릴 때는 꼭 손을 깨끗이 씻으세요.
- 바로 무친 나물도 하루가 지나면 먹이지 마세요.
- 장난감은 꼭 아침 저녁 두 번씩 소독하세요.
- 다른 가족들이 집에 들어오면 반드시 손을 씻고 아이와 접촉하게 하세요.
등등등......
어항을 버리고 나무를 치우고
모든 식기를 싹 바꾸고 세스코 소독기기를 방마다 설치하는 등 정말 대대적으로 청정구역을 만들어 감염관리를 했다.
그런데도 은우는 감염되어 열이 났고
그 때마다 자책하며 속이 타들어가던 나와 남편이었다.
교수님은 중간 중간
- 감염관리 교육받은 대로 잘 하고 있나요?
점검을 하셨고, 우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 네...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부모에게 친절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으셨고,
부모는 아이의 치료를 같이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하여튼 늘 교수님 앞에 작아지는 우리였다.
그렇게 감염을 강조했던 교수님인데
그 분으로부터 이제 더 밖에 내보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또 험하게 키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우리 아이가 건강해졌구나.
실감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파 특보가 떨어진 날도
강원도 양떼 목장 일정을 강행했고
아무도 없는 칼바람 부는 목장 비탈길을 행군하며
양과 기타 동물들에게 먹이를 줬다.
양들의 눈빛은,
- 굳이 이런 날씨에?....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까불 까불 거리다 넘어져 무릎을 까져도
- 얼른 벌떡 일어나!
하고, 넓은 공간만 나타나면
- 자, 뛰어!! 뛰어!!!
하고 아이들을 달리게 했다.
그러다가도 어린이집에서 장염이나 독감, 구내염을 옮아와 심하게 앓으면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 힘든 치료를 받은 몸이라 바이러스에 더 취약한 걸까?
- 아이의 몸이 좀 더 예민해진건 아닐까?
평생을 가도 이런 마음을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
그래서 아이를 꽁꽁 싸매고, 안전하고 청결한 환경에만 노출하려고 하다보면, 아이의 면역이 약해지는 걸까.
그래서 험하게 키우라고 하시는 거겠지.
네,
누구보다 험하게 키우겠습니다.
운동도 태릉 선수촌 급으로 시킬게요.
앞으로도 계속 계속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