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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나로살다
Apr 21. 2024
나의 빨간 고야드 가방
나는 고야드 가방을 2013년에 샀다.
프랑스 파견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기 몇 주 전에,
파리에서 꼭 사야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해서
숙제하는 심정으로 생또노레 매장을 방문했었다.
- 한국에도 매장이 없고,
파리에도 파는 곳이
2곳
밖에 없대.
- 요즘 진짜 핫해. 사오면 잘 쓸 걸.
친구들과 인터넷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
엄숙하고 정중한 고야드 매장에서,
나는 국민 기저귀 가방이라고 불리는
(당시엔 핫한 이유가 국민 기저귀 가방이라서인
줄은
몰랐지만)
고야드 생루이 백을 샀다.
프랑스인 직원이,
-
레드를
들으니 얼굴이 환해 보이시네요.
라고 한 코멘트에
3가지 컬러 중
레드를
고른
기억이 난다.
- 네. 레드로 할게요.
직원이 장갑을 끼고 생루이백을 착착 접어 더스트 백에 넣고 도톰한 종이 쇼핑백에 넣어 건네는데,
믿을 수 없이 가볍고, 믿을 수 없이 얇았다.
- 이걸
몇 백을
주고 사는게 맞나?
다른 브랜드는 포장이라도 화려한데...
여긴 뭐가 이렇게 없어보이지?
속으로 매우
매우 실망했지만,
메르씨 보꾸! 오흐부아! 를 외치며 매장을 나왔다.
그 후로 10년.
나의 고야드 백은 자신의 가치를 여지없이 증명해보였다.
깃털처럼 가볍지만
,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는 매직.
소가죽처럼 튼튼하지만
고루하지 않은 매력.
이것 저것 그것 보이는 대로 다 쓸어담아도
넘치지 않는
볼륨
.
첫째 아이의 기저귀 가방일 때
명성대로 아주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했고
특히나
둘째 아이의 병원 가방으로
업무가 확장되었을 때도
빨간 고야드 가방은 끄떡없이 버텨주었다.
특히 밤중에 열이 나 응급실을 급하게 가야할 때,
이것 저것 그것에 더하여 멸균 우유 6팩과 아이 수첩과 핸드폰 충전기와 멀티픽스와 물티슈와 스와들과 기저귀와 소독 스프레이와 포비돈 스틱과 로션과 태블릿과 떡뻥과자와 내가 먹을 초콜릿바 등등을 와르르 쏟아 담아도,
내 가방은 넘치지도, 쏟아지지도, 끈이 뜯어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어깨에 맸을 때의 착용감(?)이 너무나 안정적이었다.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랄까.
응급실 앞에서 아이를 안고 접수를 기다릴 때,
당시는 코로나 시국이라 건물 외부에서 대기해야 했다.
비가 몇방울 후두둑 떨어질 때에도
짐이 많아 몇 번을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 뜨렸을 때도
내 가방은 건재했다.
은우가 입원해있던 기간에
명품 고야드 백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천대를 받았다.
캐리어와
대형 장바구니와 함께
침대와
병원 바닥
사이의 공간
에 처박힌 것이다.
침대마다 사물함이 있었지만,
고야드 가방엔 수시로 꺼내 써야하는 물건들이 들어있었기에 항상 손에 닿는 곳에 두어야 마음이 편했다.
가방 모양도 안의 물건에 맞게 잘 변형되는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침대 아래의 좁은 공간에도 쑤셔 넣기 편했다.
나중에는 발로(!
) 가방을 밀어넣고
발가락으로(!
) 어깨 끈을 당겨 꺼내는
기상천외한 행태까지 벌어졌지 뭔가.
- 쩝. 너도 명품인데. 이럴줄은 몰랐지?
그래도 너도 참 대단하다. 어디 구멍도 안나고.
이래서 명품인건가?
은우의 3년 평가가 시작된
이번 주
.
시간이 지났어도 나의 병원 가방은 무조건 빨간 고야드다.
이제는 많이 날씬해진 것이
제법 명품티가 나는 것 같다.
6건의 검사를
헉헉대며
모두 마치고
(채혈을 12통이나 하다니 너무해! ㅠㅠ)
은우가 좋아하는 병원 식당의 떡만두국을 기다리며
가방을 의자에 턱, 걸어보았다.
역시 내 몸에 착, 감기듯
의자에도 착, 걸린다.
자세히 보니 끈 이음새와 바닥 모서리가
많이 해진 것 같다.
- 해질만도 하지
.
너무 터프한 10년이었네.
만에 하나
혹시라도 끈이 끊어진다면
방법을 찾아 AS 를 꼭 받고 싶다.
남편과 큰 아이가 그런 것 처럼
나의 빨간 고야드 백도
나의 전우, 내 동반자,
내가 가장 큰 태풍을 맞고 있을 때
그 곳에 있어준
정말 고마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오래 오래 같이 있자.
나에게 또 힘든 시간이 온다면
그 때도 내 옆에 있어줘.
지금처럼 나한테 착, 안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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