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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Jul 03. 2024

벌써 3년

전공의 파업과 MRI 검사


- 기분이 너무 다운되는거야. 별 거 아닌데.

- 트라우마라 그래.

- 트라우마? 나 그런거 없는데?

- 왜 없어~ 그 공간을 생각하면 우울하고 다운되는게 트라우마지.


어제 저녁 남편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장맛비 속을 달렸다.

처음으로 응급실에 가던 그 밤과 닮았다.

그 밤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다.


치료 종결 3년 평가 중 가장 중요한 MRI 검사가

전공의 파업으로 3개월이 미뤄졌다.

미뤄진 일정이 다음주인데, 혹시 변경 사항이 없으려나 해서 소아 MRI 실에 전화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뭐가 다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교수님과 상의한 후 받은 연락에서는

마취진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입원을 하여 마시는 수면제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


입원을 해야 하다니.


마음이 순간 묵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되고 우울하고

별 것 아닌 일에 짜증, 아무 잘못 없는 동료에게 화가 났다.


그저 MRI 를 빨리 찍기 위한 조치인데.

불투명한 일정 속에 또 다시 지연되는 걸 막기위해

교수님이 조정해주신 거라, 차라리 잘 된 것인데도


하.

다시 그 병동으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남편의 말대로 트라우마인건가.

나름 치료 기간을 잘 보냈고

병원의 간호사 교수님 옆 침대 엄마들과도

좋은 기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허세였나보다.



바로 어제 다녀온 것처럼

척척척 입원 준비물을 챙기는 나의 손과 머리라니.


작은 기내용 캐리어와

역시나 나의 빨간 고야드 가방에 짐을 쌌다.



다행인건지,

원래 치료받던 병동에는 자리가 없어서

다른 건물 외과 병동으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은우를 잘 돌봐주신 간호사 선생님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치료받는 다른 아이들과 엄마들의 고군분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긴장되기도 했기에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했다.


3년만에 입원한 병원은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다인실 병실은 한 병실당 큰 냉장고 1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침대당 작은 냉장고 1대가 배치되어있었다.


병실내 욕실 타일이 새 것으로 교체되었고

지정의와 환자이름을 종이에 인쇄해 침대머리에 끼워놓았던 곳에는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흰색 반창고도 업그레이드 되었다.

3년 전의 3M 광택있는 반창고에서

지금은 천 재질의 표면에, 격자 조직으로 만들어져

손 끝으로 깔끔하게 잘리는 반창고였다.

접착력도 훨씬 좋고 끈적거림도 묻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옷과 몸에 고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

그 반창고를 나는 집에도 한 박스 사 놓았기에

새로운 반창고도 나는 탐이 났다.

밴드처럼 자주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아이였다.

환자복 사이즈가 달라졌고

침대 위에 선 아이의 키가 달라졌다.

침대 가드는 그냥 건너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감사하게도, 아이는 자랐다.


바리바리 장난감을 싸와야했었는데

이제 게임을 하는 아이는 태블릿과 헤드폰이면

몇 시간이고 잘 논다.


기저귀가 아닌 소변통에 볼 일을 보고


- 엄마, 더워.

- 엄마, 불편해.


이야기 할 줄 알게 되었다.


수액 주사잡은 곳을 조심하라고

라인들이 많으니 움직일 때 천천히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아이였다.



3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여전히 병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은 많지만,

의학은, 병원은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하다 못해 반창고 하나도 훨씬 좋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우리가 걱정하는 많은 일들 중 상당 부분이

가까운 미래에는 치료될 수 있다고 믿자.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1년 365일

각자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우리의 아이들은, 나의 배우자는, 부모님은

어제보다 더 나은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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