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살다 Oct 21. 2021

장미와 라일락의 집

꽃과 식물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장미와 라일락이 언제 피는지는 잘 안다. 

라일락이 4~5월경 먼저 피어나고, 다 질때가 되면 6월에 장미가 핀다. 

장미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집 담벼락에서 자라던 빨간 들장미는 그랬다. 

1층 우리집 유리문 밖으로 큰 화단이 있었는데, 마당이라고 불릴만한 공간을 이 화단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가운데 중심에는 2층까지 닿는 키 높은 라일락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키작은 이름모를 풀들과 화강암을 닮은 구멍뚫린 바위들이 주위를 둘러 자리하고 있었다. 

라일락 존의 양 옆, 앞 집과의 경계를 표시하는 낮은 담벼락에는 들장미가 자리잡았다. 

라일락 향기가 장미 향기보다 강렬하다는 것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라일락과 장미는 함께 필 수 없는 것인지. 

두 꽃이 함께 피면 얼마나 보기 좋고 풍성할까?

몇 년에 걸쳐 아쉬워 하다보니 저절로 두 꽃이 만개하는 시점을 알게 되었나보다.


그 집이 정확히 아이들을 위한 집은 아니었던 것이, 

대문을 들어서면 아주 큰 화단과 1층 집으로 가는 낮은 계단 사이에 지나갈 수 있는 통로만이 있었고

그 통로를 통해 조금 들어오다 보면 계단 두단을 올라와,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2층으로 올라가는 길고 높은 계단이 이어지는 구조였다. 

아이들이 뭔가를 본격적으로 하고 놀기에는 협소한 공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참 잘 놀았다. 


초등학교 친구 한 명씩을 불러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있는 두 평 정도의 평평한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종이인형 놀이를 했다. 나에게 종이인형은 역할극이 메인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예쁜 옷과 장식들을 잘라내어 나의 주인공에게 여러가지 신상 옷들을 입혀보는 것이 짜릿한 기쁨이었다. 집에 자주 없던 엄마는 장난감 지출에는 후한 편이었으므로 나는 학교앞 하나 문구에서 새로 나온 종이인형과 보드게임을 엄청나게 많이 사재기 하곤 했었다. 옷을 입히는 고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스카치 테이프로 보수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궁극의 재미는 장난감에서 오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눈이 소복이 쌓이던 1층 집 앞 토방이야 말로 나와 동생의 천국이었다. 

여자 아이 둘은 눈송이를 뭉쳐 던지거나 눈사람을 굴리는 등, 어른들의 협조와 공간이 필요한 놀이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동네 개봉 시장에서 재밌어 보이던 것들을 접목하여 우리만의 '눈장사 놀이'를 창조해냈다. 

시장의 많은 상인들 중, 정육점 아저씨가 고기를 썰어 비닐에 담아 파는 모습이 우리에겐 가장 재미나 보였더랬다. 


"어서오세요~ 어떤 고기를 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찌개 끓일 고기랑 구워먹을 고기 주세요~"

"아 네~ 얼만큼 드릴까요?"

"네 한 근 씩 주세요~"


한근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토방에 쌓인 눈 더미를 크게 뭉쳐놓고는 책받침으로 잘라 한근씩 나눈 후 

집 부엌에서 가져온 쓰다남은 비닐 봉지를 벌려 눈덩이를 넣는다.


"여깄습니다~ 2만원입니다~"

"네 영수증 주세요~"


자동으로 기계에서 나오는 영수증이 아니라 뒤에 먹지가 대져있는 수기용 영수증 또한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구매한 물품과 가격을 적고 하단 공백에 크게 7자와 점을 찍는 것도 멋지고, 마지막에 자를 대고 한장씩 북 찢어서 비닐 봉지 안에 넣어주는 것이 킬포였다. 


우리의 눈장사 놀이는 점차 진화하여 나중에는 까만 비닐봉지 한묶음도 구비, 한 장씩 톡 뜯어 장갑 낀 손으로 비벼 벌리는 퍼포먼스도 추가되었고,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영수증 사이즈도 다양하게, 스탬프와 도장도 함께 마련하였다. 

동생의 로망은 계산대에서 띵! 소리가 나며 드르륵 열리고 닫히는 돈통이 달린 큰 계산기였다. 

그 계산기는 저절로 영수증도 출력되었으니 우리의 눈엔 엄청난 아이템으로 보였다.  


봄 여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드는 걸 매년 화단에서 볼 수 있었던 우리.

꽃 나무 풀 들이 없는 겨울에는 눈장사 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우리.


우리는 꽤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고척동 2층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