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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Oct 22. 2021

엄마의 거실

"엄마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일을 하셔서 집에 잘 안계셨어요. 

고등학교 교사셨는데도 퇴근 후 석사 박사 과정을 하시고, 또 학위를 따신 후에는 

야간 대학원에 강의를 나가셔서 밤 늦게나 집에 오셨거든요.  

아직도 기억나는게, 제가 초등학교 3~4학년일 때였던거 같은데, 밤에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났는데, 저희 방 불투명 유리문으로 거실에 불이 환히 켜져있는게 보이는 거에요.  

엄마다! 싶었죠.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나갔더니 역시나 엄마가 거실에 있는 책상에서 

두꺼운 책을 여러권 펴 놓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화장실을 다녀 온 후에 제 베개를 가져와서 엄마 발치에 놓고 엄마 다리를 안고 잤어요."


백이면 백 상대방, 특히 상담사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내 에피소드이다. 

막상 그 때 엄마 다리를 안고 자던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거나 애처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엄마 다리는 엄청 부드럽고 엄마는 발냄새도 안나는구나,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고척동의 꽤 넓은 평수에서 목동의 작은 평수로 이사를 갔을 때에는

거실에 로코코 형식의 2인용 쇼파가 있었는데, 엄마는 퇴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늘 그 쇼파에 누워

종아리를 팔걸이 부분에 걸치고는 너무 시원하다며 양옆으로 문질문질 했다. 

그러다가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종일 엄마를 기다리던 나와 동생은 밤 늦게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엄마 주위를 맴돌며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엄마에게는 

세수를 할 힘도 없었기에 우리는 참존 클렌징 티슈를 가져다가 엄마의 화장을 지워주었다. 

엄마는 잠결에도 "아이구~~ 우리 강아지들~~~ 고마워~~~" 하며 웃었다. 

클렌징 후에는 따듯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잠깐 쪽잠을 잔 엄마는 그제서야 몸을 일으켜 스킨을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 다음 조금 큰 평수로 이사를 갔을 때 엄마는 학교 근처의 목공소에서 버렸는데 

너무나 쓸만하다는 합판을 가져와 거실에 쇼파 겸용 엄마의 침대를 만들었다. 

합판 위에 얇은 매트리스를 깔고 패드를 깔고서 티비를 보다가 그대로 잠드는 엄마만의 전용 공간이었다. 

엄마가 잠들고 나면 나와 동생은 엄마를 베고 안고 함께 누워 티비를 보곤 했다. 

엄마의 배는 엄청 물렁물렁하고 부드럽고 넓었는데, 베고 있으면 크게 꾸룩꾸룩하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꾸룩거리는데 잠이 깨는거 아닌가? 기대하며 엄마 얼굴을 보면 입을 헤 벌린채 자고 있는 엄마였다.


엄마는 왜 항상 거실에서 쉬고 잠을 잤을까.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을 엄마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단순히 티비가 거실에 있어서 였을까.

아빠가 나쁜 잠버릇이라도 있었던 걸까.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많은 것들 중 하나이다. 


지금 제주도에 계신 엄마.

3층 집의 3층 거실을 모두 엄마 공간으로 쓰고 있다. 

커다란 티비에 스피커에 다도 기구에 헬스 자전거 까지.

여러 겹의 요를 깔고 누워서 온갖 드라마를 한껏 몰아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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