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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칠 Dec 09. 2019

디디는 가만히 침대에 앉았다.

191203/01:25

디디의 길지 않은 속눈썹 사이로 투명한 막이 고였다. 눈물이 맺혀오면 디디는 절대 눈을 껌벅이지 않는다. 충분히 차오르지 않은 슬픔을 성급히 빼내기 싫었다. 여물지 않은 뾰루지를 성급하게 짜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런 뾰루지를 건드리면, 불순물은 나오지 않고 생채기만 생기기 일쑤다. 쌓이고 쌓여 그저 흐르도록 놔두는 것, 그게 디디가 우는 방식이었다. 눈물이 떨어지자 디디는 그제야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 없이 운다. 작은 소리 조차 내지 않는 것 또한 혼자서 몰래 울어 왔던 디디의 습관이다. 소리 없이 외치기도 하고, 소리 없이 침대를 내려치기도 한다. 크게 벌어진 입 안으로 눈물이 들어가도 디디는 개의치 않는다. 온 정신을 그저 소리 없이 우는 것에만 집중한다.

집중해서 울음을 터트리고 나자 디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울기를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울며 다시 해야 할 일로 돌아갔다. 양말과 속옷을 벗어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벗어두었던 옷가지를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이유 없이 터진 울음 때문에 늦장을 부리면 결국 디디만 손해였다. 돌연 세탁기 옆, 포장도 뜯지 않은 박스를 돌아보았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김치였다.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는 디디가 마음에 걸린 부모님은 디디 집의 작은 냉장고에는 미처 다 들어가지도 않을 양의 김치를 보내주었다. 박스를 보며 디디는 부모를 생각했다. 부모를 생각하자 디디는 다시금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괜스레 부모님이 안쓰러워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처량 맞은 디디의 외로운 울음에,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부모님께 고마워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베란다를 나온 디디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내버려 두고 발을 닦았다. 또 양치를 했다. 거울에 비치는 못난 얼굴이 마음 쓰인다. 찬물을 틀어 얼굴을 벅벅 씻어낸다. 벌게진 코를 잡아 힘껏 풀고 비눗물을 한참이나 닦아낸다. 열이 오른 얼굴에 닿는 찬 기운이 좋다. 책상에 앉아 부어오른 얼굴을 바라보았다. 찬물 세수를 연거푸 했는데도 여전히 퉁스럽다. 세수로 말끔해진 얼굴에 다시 눈물을 묻히지 말자고 작은 다짐을 한다. 탁상 거울 뒤에 있는 작은 상자에서 솜 하나를 꺼내 들었다. 탁, 타닥, 탁. 유리병에 든 토너를 손으로 흔들어 쳐냈다. 토너는 매번 바르던 그만큼만 솜에 묻어났다. 슥슥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이 괜히 디디의 가슴에 울림을 만든다. 눈물이 올라오려고 하자 꾹 참아본다.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디디는 서둘러 감정을 억눌렀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감 긴 눈을 헤치고 눈물이 삐져나올까 봐 디디는 재미있던 것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어제 유튜브에서 다시 보았던 옛날 예능을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디디는 책상에 앉아 이런 노력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울음이 불편했던 적은 있어도, 싫었던 적은 없었다. 다음날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하는 게 걱정되지 않았다면, 디디는 매일 밤 울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다니던 전광판 광고 회사에서 디디는 입사하고 일주일 만에 부어오른 눈으로 출근했다. 10명 남짓되는 부서 직원들은 하루 종일 디디에게 의문의 시선을 던졌고, 일부 용감한 선임들은 걱정 어린 참견의 소리를 내었다.

애인이랑 무슨 일 있었어? 역시 애인은 풀어주면 안 돼. 꼭 사고를 친다니까.

혹시 반려동물 키워? 우리 아기들 아픈 거 보면 동생 아플 때 보다 더 속상하다니까. 아는 지인이 동물병원을 하는데, 어딘지 알려줄까?

집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얼굴이 말이 아니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내라.

디디는 눈물과 직결되는 붓기, 붓기와 사회생활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상에는 미니 가습기가, 냉장고에는 수시로 붓기를 빼줄 수 있는 냉찜질 팩이 항상 자리하게 되었고, 지금처럼 갑자기 솟아나는 감정들에 대처하는 법 따위를 나름대로 가지게 되었다.

디디의 눈물은 흐르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얼굴은 크림을 발라 번들거렸다.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일상의 디디로 온전히 돌아갔다. 디디는 늘어지는 몸을 침대에 눕히고 유튜브를 틀었다. 오늘은 주말에나 시도해 볼 연어장 만드는 법을 검색해 볼 예정이다. 쫀득한 연어장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디디에게 울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비밀스러운 행위였다. 슬픈 감정은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다. 슬픔은 나를 차분하면서도 감정적이게 만들었다. 때때로는 나를 어느 때 보다도 더 이성적인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슬픔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나를 슬프게만 만들지 않기에 슬픔이 싫지 않다. 슬프지 않은 나는 어제와 똑같이 평범한 나지만, 슬픈 나는 어느 드라마 속의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제일 서럽게 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된다. 슬픔을 등에 업으면 나의 슬픔을 객관적으로 보며 울 수 있다. 나의 슬픔이지만 나의 슬픔을 연기하는 것 같이. 연기가 끝나면 배우들은 환호받는다. 나의 연기도 끝나면 나의 작은 환호가 기다린다. 어쨌든, 나만의 작은 공연을 끝냈으니까.

디디의 소리 없는 연기는 남들 것과 조금 다르다. 하지만 디디는 괜찮았다. 슬픔에 꼭 소리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소리를 죽여 텔레비전을 봐도 배우들의 슬픔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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