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아웃오브아프리카>와커피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by 정지영

커피 '마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일상화되었지만 커피 '키우기'는 어떨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다. 집에서 화분에 심어 한 그루, 두 그루 소량 재배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커피 가게에서 관상용으로 두는 경우도 많고, 상업적으로 대량 재배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와인 수입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특색 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것처럼 커피도 생산할 수 있을까. 자, 커피나무에 대해 알아보자.


1985년에 개봉한 메릴 스트립,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덴마크 작가 카렌 블릭센의 저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원작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서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든,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든 당황하는 건 마찬가지다. 책과 영화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책은 카렉 블릭센이 케냐에서 겪은 여러 일들과 자신의 생각들을 단편처럼 나열하기 때문에 영화와 달리 중심 되는 이야기가 없다. 굳이 주인공을 꼽는다면 카렌의 시각으로 본 원주민과 풍경일 것이다.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인 데니스 핀치해튼(영화에서는 로버트 레드포드 역)과의 일화는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영화는 카렌을 중심인물로 케냐에서 겪는 인생역정과 데니스의 사랑을 중심에 둔 로맨스 이자 모험 영화이다. 원작에서는 데니스가 자신의 애인이라는 언급이 하나도 안 나오기 때문에 책만 읽어서는 둘의 관계가 친구 이상이라는 생각을 절대로 할 수 없다. 어쨌든, 영화도 책도 둘 다 재미있다(개인적으로 책은 군데군데 지루하기도 했다).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서양 여성의 시각이라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으니 그 점을 감안하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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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카렌 블릭센은 1914년 결혼하면서 영국령 동아프리카(헌재 케냐)에서 살게 되었다. 나이로비 근처에서 커피 플랜테이션 사업을 하던 카렌 블릭센은 1921년부터 남편과 별거해 40세 되던 1925년에 이혼했다. 데니스 핀치해튼과는 1918년 처음 만나 1924년부터 함께 살았다. 카렌은 데니스의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카렌은 자녀가 없다). 카렌이 46세가 되던 1931년에 데니스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농장도 팔려서 그녀는 덴마크로 돌아가 다시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러 소설을 써서 작가로 성공한 그녀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2차례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녀는 77세인 1962년 세상을 떠났다. 데니스는 케냐에 묻혔지만 카렌은 덴마크에 묻혔다.


영국령 동아프리카(동아프리카 보호국)는 19세기 말 동아프리카에 건설된 영국 식민지이다. 서로 '미개한' 아프리카를 차지하겠다고 눈에 불을 켠 유럽 열강과 미국, 오스만 튀르크 14개국은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멋대로 아프리카를 분할했다. 영국은 현재의 케나 지역을 차지했고 후에 우간다 지역도 지배하게 되었다. 1888년에 설립된 대영제국 동아프리카 회사(IBEA)가 이 지역을 관리했지만, 1895년 보호령이 선언되면서 영국 외무성의 관리를 받게 되었고, 1920년에는 본국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963년이 되어서야 영국에서 독립하여 케나갸 되었다.


케냐에서 커피가 재배된 건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기독교 선교단체가 종자를 가져와 재배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바로 이웃의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원산지인데도 근래 들어서야 커피를 재배하게 된 것이다. 케나에는 우기가 연 2회여서 연 2회 수확이 가능하다. 11월에서 이듬해 초까지 수확된 커피가 품질이 좋아 메인 크롭이라 하고, 6~7월에 수확된 커피는 플라이 크롭이라고 한다. 최대 산지는 수도 나이로비의 북동에서 북서에 걸쳐있는 케냐산 주변과 아바디아 산맥 주변에 펼쳐진 지역이다. 현재 케냐에서 주로 재배하는 품종은 SL28와 SL34라고 한다. 두 품종은 1935년 스콧 레버러토리에서 번식시킨 품종으로 부르봉종(아라비카 종)이다( 참고자료 1). 카렌이 재배한 커피나무 품종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라비카 종이 었을 것이다.


카렌은 케냐에 머문 17년 동안 커피 재배에 매달렸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커피가 자라기에 지대가 높고,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으며, 공장에 불이 나는 등 계속되는 악순환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농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커피가 많이 생산되기에 커피나무가 열대식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커피는 선선한 고원지대에서 자라는, 이것 저것 따지는 게 많은 까다로운 작물이다.


커피는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연평균 기온 22도 정도의 고지대에서 잘 자란다. 아라비카종의 자생지인 에티오피아 고원은 그늘이 많고 연평균 기온이 20~24도이다. 커피가 재배되는 지역을 커피벨트라고 하는데 북위 25도와 남위 25도 사이 지역을 말한다. 북위 37도인 우리나라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는다. 카네포라종은 따뜻한 저지대에서 재배된다(주석 1).


커피벨트.jpg 출처: 동서식품 블로그(주석 2)



커피나무 주변에는 녹음수(shade tree)라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키 큰 나무를 심는다. 숀 스테이먼은 <커피연구소>에서 꼭 녹음수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 햇빛을 많이 받으면 광합성이 많아져서 그만큼 꽃도 많이 피고, 열매도 많이 달리기 때문에 나무는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적당한 영양분을 보충하지 못하면 잎과 열매가 시들기 때문에 녹음수 없이 땡볕에 커피나무를 키우려면 사람이 알아서 적당한 영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즉 손이 많이 간다. 이 외에도 멀칭, 생물 다양성 등 녹음수의 장점이 더 많기에 주변에 심지만 그늘과 햇빛의 여부가 커피의 맛에 영양을 미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한다.

커피나무를 재배하려면 연간 1,200~1,600mm의 강수량이 필요하다. 카렌의 커피농장이 망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물 부족이었다. 다른 식물들도 그렇지만 특히 열매가 맺는 시기에 안정적으로 물이 공급되어야 한다.

가지치기도 중요하다. <커피 교과서>에 의하면 열매가 열린 자리에는 다시 꽃이 피지 않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잘린 줄기 옆에서 새 가지가 자란다고 한다.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종과 카네포라(로부스타)종으로 나뉜다. 동아프리카에서 재배하는 커피는 아라비카종이다. 아라비카종은 고지대에서 재배하기에 알맞고, 맛도 더 좋지만 병충해에 약하다. 대표적인 병이 잎곰팡이병과 탄저병(열매곰팡이병)이다. 1869년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커피를 많이 생산하던 실론(현재 스리랑카)에서 잎곰팡이병으로 커피나무가 전멸하다시피 했고, 이후 홍차가 커피를 대신해 유명한 실론티가 탄생하게 되었다. 카네포라(로부스타)종은 상대적으로 병충해에 강하고(로부스타는 튼튼하다는 뜻이다), 관리가 수월하고, 카페인 함양도 2배 정도 높다. 대신 맛이 아라비카종에 비해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0여 년 사이에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확 늘었다. 아라비카종과 카네포라종 중 어떤 종이 주로 재배되는지 자료는 없으나 국내 최대 규모의 커피 농장에서 아라비카종을 키운다고 하니 아마도 아라비카종이 대세가 아닌가 한다(주석 3). 포털이나 유튜브에 커피나무 재배를 검색해보면 꽤 많은 결과가 나온다. 상업적으로 키우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커피를 생산해서 외부에 널리 유통하는 단계는 아니고 대부분 농장과 함께 운영하는 커피숍이나 체험장에서 소비, 판매하는데 그치고 있다. 한국은 기후상 위에서 언급한 커피 재배 조건에 맞지 않을뿐더러(겨울에 나무가 얼어 죽기 때문에 비닐하우스가 필수다) 커피만 주력으로 하기에는 경제성이 확실하지 않아 선뜻 도전에 나서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 재배에 도전하고 있고 지금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모험과 적응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기후가 점차 아열대로 변하고 있어 더 이상 기존의 작물을 고집할 수가 없다. 고흥에서는 커피를 새로운 주력 작물로 삼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주석 4). 설사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여러 시행착오는 또 다른 시작과 성공을 만들어 낼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한 커피의 맛은 검색해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다. 미각이 좋지 않은 데다가 국내에서 생산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못 먹어봐서 개인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다. 경기도에도 커피농장이 있으니 코로나가 물러나면 방문해볼까 한다.


커피벨트를 벗어난 대한민국에서 커피 재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반해 커피나무의 운명은 그리 밝지만은 못하다. 바나나가 멸종되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커피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큐 왕립식물원 수석연구원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전 세계 야생 커피 124종 중 75종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연구결과를 2019년 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38년에는 커피 생산량이 40~50% 정도 줄어들고, 2040년에는 아라비카와 카네포라가 멸종할 거라고 전망했다(주석 5). 불과 20여 년 뒤에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커피가 사라진 세상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커피는 진정한 국민음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케냐 국민들은 커피 대신 차, 그러니까 밀크티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주석 6). 케냐는 커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 생산지이기도 하다. 커피는 매년 생산량이 줄고 있어서 2017년 약 4만 톤을 생산해 커피 생산국 중 22번째 생산량을 기록했다. 필리핀이나 베네수엘라보다 적은 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케냐 커피를 선호해서 수입량이 계속 늘어 2018년에는 케냐에서 생산한 양의 10%를 한국에서 수입했다고 한다(주석 7). 하긴 어느 커피숍을 가도 '케냐 AA'를 쉽게 볼 수 있으니 케냐 커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카렌이 살던 케냐의 집은 이제 박물관이 되어서 케냐의 관광코스에 빠지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영화의 영향력이 컸다). 커피나무는 다 없어지고 한 그루 남아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카렌 박물관 사진을 보다가 책에도 나온 방앗돌 테이블을 발견했다. 카렌은 방앗돌 테이블에서 원주민들과 거래를 했기에 그 테이블이 농장의 중심지라고 했다. 카렌은 커피를 마셨을까 아니면 밀크티를 마셨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앉았을 그 테이블에서 무엇을 마셨을지 궁금하다. 농장이 파산해서 카렌은 어쩔 수 없이 케냐를 떠났다. 책에 의하면 그녀는 농장이 팔리고도 자신이 농장을 포기해야 함을, 아프리카를 떠나야 함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카렌의 애착은 컸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들(원주민)의 그런 자세를 배워서 마치 수치심에 싸인
사람처럼 고난의 시절에 대해 얘기하거나 불평하는 걸 포기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그녀가 케냐를 떠나고 6년 뒤에 출간한 책이다. 고된 노동과 숱한 고통을 안겨준 커피농장이지만 그녀의 책에서는 불평도 불만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아름답게 미화하지도 않는다. 카렌의 일부분은 그녀가 경탄해 마지않았던 아프리카인이 된 것이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갈 수 있다면 케냐의 카렌 박물관에 가보고 싶다. 방앗돌 테이블에 앉아 달콤한 믹스커피 한 잔, 담백한 아라비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불평불만 대신 삶의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가슴에 담아 오고 싶다. 아라비카 커피가 멸종하기 전에 갈 수 있을까.










주석

1. 농사로 - 국내 환경에 적합한 커피 재배법 알아보기

http://www.nongsaro.go.kr/portal/ps/psv/psvr/psvre/curationDtl.ps?menuId=PS03352&srchCurationNo=1615&pageUnit=&pageIndex=1&sEraInfo=&sSrchAll=Y&sKidofcomdtySeCode=&sType=&srchStr=

2. 동서식품 블로그

https://www.dongsuh.co.kr/2017/03_mediaCenter/06_coffeeClass_step2_view2_1.asp

3. 매일경제 - 한국산 커피 아시나요? 국내 최대 커피농장을 가다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20/08/788228/

4. 한겨레 - 고흥의 승부수, 고급 커피 ‘나로도 아라비카’

https://www.hani.co.kr/arti/society/area/882323.html

5. 동아사이언스 - 2040년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커피 못마신다…야생커피종 60% 멸종 위기

http://m.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6347

6. 데일리 투머로우-국력을 하나로 묶는 국민 음료 케냐 티

http://www.dailytw.kr/news/articleView.html?idxno=14324

7. 한국일보 - 커피벨트를 가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5041641719320





참고자료

1. <커피 교과서>, 호리구치 토시히데 지음, 윤선해 옮김, 달

2. <커피 연구소>, 숀 스테이먼 지음, 김수민 옮김, 웅진리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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