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와 씨앗

씨앗은 외친다. 날 기억해줘!

by 정지영

목숨을 걸고 찾아온 이곳은 그토록 바라던 녹색의 땅(The Green Place)이 아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오직 모래, 모래뿐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온갖 식물이 자라나는 풍족한 '녹색의 땅'은 부발리니와 퓨리오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목적지를 잃은 도망자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도망쳐온 그곳, 시타델로 가기로 한다. 다시 한번 목숨을 내놓고서. 부발리니의 일원인 시드 키퍼(Keeper of the Seeds)는 과거 녹색의 땅 시절에 모아놓은 귀하디 귀한 씨앗들을 품에 안고 시타델로 향한다. 그녀는 죽지만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간 씨앗들은 시타델에서 풍성한 미래를 꽃피울 것이다.


a7a617283a97b567b4d206f350a0eaffb1402eeb07ebd4133d7ca3b80ac8bb7cc4baccd42d41be5e8279cf73c4f2895a80ca7f9b47c03ded40ab2a4dec26ffdd37e778827f9407fcdf64cf9178a780b959bbe7757d9ef5cd8ab787ae28ef63aef3e309535e44cf261fe6abe1b9.jpg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는 2015년 개봉한 영화이다. 다행히 나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개봉 전만 해도 유명하지도 기대치가 높은 영화도 아니었는데 입소문이 나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나 역시 별 기대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매드맥스교 신도가 되어서 나왔다. 상영 내내 둥둥거리는 북소리에 홀려있었는데 극장을 나와서도 심장이 쾅쾅 뛰어서 흥분감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같이 영화를 봤던 남편은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는지 싱숭생숭한 반응이어서 극도의 흥분을 보인 내가 미친년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케이블 티브이에서 영화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보게 된다. 몇 번을 봐도 질리기는커녕 감탄을 하게 되니 나는 신심깊은 매드맥스교 신도가 확실하다(내게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영화로는 에이리언과 터미네이터 등 몇 개가 더 있다).


영화 줄거리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2015년 초히트 영화라 자료도 많고 본 사람도 많아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직 못 봤다면 꼭 한번 보기를 권하는 바다.


<매드맥스>는 시리즈다. 1편은 1979년, 2편은 1981년, 3편은 1985년에 제작되었고 모두 조지 밀러가 메가폰을 잡았다(3편은 조지 밀러가 액션신만 맡아서 2명의 감독이 연출했다). <분노의 도로>가 2015년(조지 밀러는 개봉 당시 70세)에 나왔으니 무려 30년 만에 새로운 매드맥스를 찍은 셈이다. 1985년과 2015년 사이에 조지 밀러는 <로렌조 오일(1992)>, <꼬마 돼지 베이브(1995)>, <해피 피트(2006)> 등을 연출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따라 하기도 어려운 극과 극의 필모그래피라 하겠다(앞서 언급한 영화 셋다 재미있다). <매드맥스> 1~3편의 주연은 멜 깁슨이었고 호주 출신의 무명배우였던 멜 깁슨은 이 영화로 주목받아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분노의 도로>의 주연 배우인 톰 하디와 샤를리즈 테론은 이미 A급 할리우드 스타였으나 이 영화로 호평을 받았고(차후 몸값이 더 올라가는데 일조했으며) '퓨리오사'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환호를 받으며 스핀오프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영화 속 배경은 거의 다 사막이다. 과거 녹색의 땅이었던 곳은 오염되어서 진창 같은 늪으로 변해버렸고 생명이 살 수 없는 버려진 땅이 되었다. 독재자 임모탄이 다스리는 시타델은 바위 산이라 겉보기에는 황량하지만 그 아래에는 물이 풍부하고, 내부에는 소수를 위한 쾌적한 시설(심지어 식물공장 같은 시설도 있다!)이 갖춰져 있다. 시원한 물과 푸른 식물은 모든 이들이 갈망하고 지향하는 최상의 가치이다. 독재자는 물과 식물을 독점하여 자신의 권위를 돈독히 한다. 독재자가 죽자 감금당한 채 모유를 착취당했던 여성들이 물을 방류하여 시타델의 자유를 축하한다. 바위 산 아래에 물은 충분하다. 이제 식물을 키울 차례이다. 시드키퍼가 가져온 씨앗들은 잘 자랄 수 있을까.



녹색의 땅이 언제 황폐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녹색의 땅이 그대로 있었다면 진작에 임모탄이나 다른 세력에게 빼앗겨서 식물 공급지로 착취당했을 것이고 시타델의 주요 인물들이나 주민들이 모를 리가 없다. 적어도 그런 곳이 있다더라 소문이라도 돌았을 것이다. 퓨리오사만 기억하는 곳이라면 아마도 퓨리오사가 납치되기 전후나 그 이전에 이미 황폐해졌을 거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대략 퓨리오사가 납치되었던 19여 년 전이라고 가정해보자(납치된 지 7000일이 넘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럼 시드키퍼가 가진 씨앗은 적어도 10~20년 전에 채종(씨앗을 받음)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10년도 더 된 씨앗이 과연 제대로 발아(싹이 틈) 할 수 있을까.


종자에도 수명이 있다. 발아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을 종자의 수명이라 한다.


수명이 1~2년인 단명종자는 콩, 파, 양파 당근, 고추, 상추, 메밀, 우엉, 토당귀 등이 있고

수명이 2~3년인 중명종자는 벼, 보리, 밀, 무, 완두, 목화가 있으며

수명이 4~6년 또는 그 이상인 장명종자는 토마토, 수박, 호박 녹두, 오이, 배추, 가지, 알파파 등이 있다.

(출처:종자기능사, 부민문화사, 2019)


몇 년 묵힌 씨앗은 심었을 때 싹이 틀 수도 있고 안 틀 수도 있다. 발아에 관여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일단 종자의 수명이 다 되었다면 다른 조건이 다 갖춰져도 싹이 나지 않는다. 또한 종자를 어떻게 저장했느냐도 중요하다. 일단 종자를 건조하고 나서 온도와 상대습도를 맞춰줘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종자 저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대다수의 종자는 5도 이하의 온도와 50% 이하의 상대습도 환경에 저장할 경우 발아력을 잘 유지한다. 고온 고습에서 저온 저습까지 일 년 내내 날씨가 널뛰는 한국에서는 많은 도시농부들이 냉장고에 종자를 저장한다. 굳이 냉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냉장실에서도 온도 변화가 적은 야채칸이나 깊숙한 곳에 넣어서 보관하는 게 좋다. 냉동고를 이용할 시 종자의 수분함량이 많을 경우 얼어 죽을 수 있다고 한다.(출처1) 종자가 저온에 감응하는 종자춘화형인 배추, 무 등은 꽃대가 금방 올라올 수 있으므로 냉장고에 저장하지 않는게 좋다. 간단히 적는다고 몇 가지만 나열했지만 이렇게 종자를 저장하는 게 까다롭다. 그러니 제일 간편한 방법은 매년 씨앗을 사서 남김없이 파종하는 것이다. 씨앗 봉투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적혀있는데 포장일과 유효기간이 적혀있다. 그 날짜 내에 심는 것이 좋다. 내가 키운 작물 내가 채종 하겠다는 의지가 굳다면 채종을 하되(사실 채종도 어렵다...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작물에 맞게끔 보관을 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침대가 과학이 아니라 농사야 말로 과학이다(이 농담을 요즘 초,중학생들에게 했더니 알아듣지 못했다는 슬픈 후일담이 있다).



생명력이 강한 씨앗의 대표는 연꽃이다. 몇 년 전에 뉴스에도 났는데 무려 700년이나 된 고려시대의 연꽃이 발아하기도 했다(출처 2). 연꽃을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꽃 씨앗은 무척 단단하다. 그래서 싹을 틔우려면 먼저 씨앗에 구멍을 내서 물이 씨앗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껍질이 단단하면 싹이 트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최악의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뭐가 더 좋다 나쁘다 말하기가 어렵다. 진화에는 정답이 없다.



20181230000101_0.jpg 아라홍련,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81230000120



어찌어찌 잘 보관되었다고 해도 싹이 트는데 또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온도, 산소, 물이다. 발아의 3요소를 물어보면 햇빛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종자는 발아할 때 햇빛이 필요하지 않으나 호광성 종자인 담배, 상추, 우엉, 샐러리, 갓 등은 빛에 의해서 발아가 촉진된다. 이런 종자는 얕게 심어 빛을 쬐어주면 좋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싹이 트는데 꼭 필요한것은 적당한 온도, 산소, 물이다.


학교에서 숲 체험이나 텃밭 수업을 하다 보면 씨앗을 보게 되는 경우가 꼭 생긴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이거 집에 가져가서 키울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어렵다고 말해준다. 조건 맞추는 게 어렵다고 부연설명을 하기는 한다. 그래도 씨앗을 챙겨서 가져가는 아이들이 있는 데 성공했는지 모르겠다.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호기심과 질문이 이런 생태, 농사 수업을 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종자 보관과 관련해서 중요한 시설이 종자은행과 시드볼트이다. 이 둘에 대해서는 원래 이 글에서 언급하려 했으나 내용이 너무 길어질것같아 차후에 적으려고 한다. 2019년으로 기억하는데 마곡에 있는 서울식물원에서 종자 강의를 들은적있다. 강연자의 성함이 '오도'여서 기억에 남고, 내용도 기억에 남았다. 종자는 내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고로 종자 이야기는 to be continued가 되겠다.



시드키퍼는 죽고 그녀의 씨앗은 임모탄의 아내(감금되어 아이를 낳도록 강제받는 사실상 임신 노예이지만)였던 대그에게 넘어갔다. 독재자를 위해 아이를 임신해야 했던 대그는 이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식물을 키우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부디 대그가 자신의 임무를 좋아하길!. 그리고 시타델에 평화가 오길!.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시타델이 되길!.







출처

1. 농사로

https://www.nongsaro.go.kr/portal/ps/psz/psza/contentSub.ps;jsessionid=X5Y8mYEY1L9FPK7he20RBfiKmeaI5lMVPG9iyIW91bWlBCKh0Mf02zc2BSnLYCL2.nongsaro-web_servlet_engine1?menuId=PS00078&cntntsNo=209036&totalSearchYn=Y

2. KBS, '700년 만에 터진 꽃망울.. 고려시대 연꽃 활짝'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7673443

디지털함안문화대전, '700년의 세월을 넘어 거듭난 아라 홍련 이야기

http://haman.grandculture.net/haman/toc/GC06201368



keyword
이전 11화10. <워터월드>와 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