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며

by 정지영

나는 끈기가 부족하고 의지가 약하다. 어릴 때는 그런 경향이 덜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지고 있다. 체력이 약해지고, 세상사에 시달려 소심해지고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다. 이 '영화로 농사짓기' 프로젝트도 겨우 10개의 영화밖에 되지 않기에 넉넉잡아도 두세 달이면 쓰겠다 했는데 해를 넘겼다. 9번째 영화인 워터월드를 2021년 6월에 썼는데 마지막 10번째 영화는 2022년 1월에 썼으니 뒷심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어쨌든 마무리를 짓게 되었으니 자책감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출간 욕심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의 첫 번째 책은 여행기이다. 두 번째 책을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말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핑계는 많지만 여기서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핑계라는 게 원래 창피한 거니까. 원래 생각했던 아이템이 있었지만 관심이 멀어지면서 폐기했고(육아와 관련된 것이었다) 첫 번째 책 편집장님의 추천으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쓰는 게 편해서 여러모로 생각하다가 나의 전공이었던 영화와 현업인 텃밭강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영화로 농사짓기'를 기획하게 되었다.


얼마 전 친구 모임에 나갔다가 다른 사람들은 팟캐스트 프로그램들을 이야기하면서 다들 주제에 동참하는데 나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때 한 친구가 '지영이는 불교방송 봐서 그런 거 모른다'라고 놀림반 진담반 폭로를 했다. 불교방송을 보는 게 하니라 불교방송의 한 프로그램만 보기 때문에 좀 억울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불교방송을 보는, 트렌드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이기에 따로 할 말은 없었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이런 내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인정해주는 친구들이기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그 모임에 참석했던 친구 남편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보았다. 하긴, 불교방송을 보는 41살 아이 엄마가 흔하지는 않지.


대학 졸업 이후 이거 조금 하다 때려치우고 저거 조금 하다 때려치우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뛰어들었는데 얼마 안 가 흥미를 잃어버리고 나태에 빠져버리곤 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진로 고민은 평생 하는 거라는 글을 봤는데 나 역시 지금까지도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하나 깨달은 건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파고드는 걸 잘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누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더 관심을 쏟으니까. 문제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세상 사람들이 관심 없는 분야라는 것. 그래도 나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는 게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심이 없거나, 내 생각과 다른 그럴듯한 글을 써야 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영화와 텃밭. 따로 두면 인기 있는 소재인데 막상 둘을 엮어 쓰고 나니 재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정보의 나열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그쪽에 치중되어서 그럴 것이다. 쓰고 나니 각 부분마다 영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수정을 해볼까 하다가 일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다음 기회란 종이 책으로 출간될 때를 말한다. 이게 출간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와 텃밭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정보가 있기를 바라고, 둘 다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이런 영화에 이런 작물이 나오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미처 못 본 영화를 챙겨보고 나와는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 또 다른 아이디어와 감정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는 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시즌 1은 이렇게 끝이 나고 시즌 2는 기약이 없다. 그래도 앞으로 영화를 볼 때마다 매의 눈으로 어떤 식물이 나오는지 주의해서 볼 계획이다. 여러분들도 그런 의외의 즐거움을 누리시길 바란다. 트렌드에 관심이 없는 이 몸은 영화와 텃밭보다 더 비주류인 주제로 글을 쓸 계획이다. 그때 또 만나 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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