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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Mar 23. 2023

마라톤 출사표

비록 5km지만 그래도 마라톤

주의 - '런데이' 앱을 홍보하려는 목적은 코딱지만큼도 없고, 콩고물 떨어지는 것도 하나도 없으나 이 앱을 사용하는 이상 설명을 안 할 수가 없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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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2021년에 '런데이'라는 앱을 깔았는데 설치만 하고 쳐다도 안 보다가 2022년 초에 드디어 개시를 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핑계반 진짜 바쁜 거 반) 몇 번 달리다가 중도 포기. 2023년이 되어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번 겨울 새벽 5시면 깨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추우니까(갑자기 오른 난방비 때문에 겨우내 서늘하게 지냈다. 이것이 바로 서민의 겨울) 이불속에서 비비적거리곤 했다. 계속 누워있어 봤자 잠도 안 오고, 쓸데없이 핸드폰 보느라 눈만 상하고, 시간도 아깝다 싶어서 이럴 바에 새벽 운동이나 하자 싶었다. 항간에 유행했던(아직도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라클 모닝에 숟가락을 얹는다는 느낌도 나고 말이다.


 언젠가 운동을 재개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단지 하기가 너무 싫어서 미룰 핑계를 대고 있었을 뿐이지. 이놈의 살을 빼서 10여 년 전에 사서 몇 번 입지도 못한(그리고 10년간 버리지도 못한) 로엠 원피스를 입겠다는 원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다. 이제 내 나이 42살. 핫핑크와 커스터드노랑의 화려한 로엠 원피스를 입기에는 나날이 얼굴이 칙칙해지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입어야 한다(로엠이 웬 말이냐며 비웃던 20년 지기 친구들은 실물을 보자 구마의식하듯 저 멀리 내팽개쳤다. 어디 양잠점에서 사온줄 알았다고). 주변의 비난 따위 상관없이, 건강보다는 일단 살 빼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평생 운동과 담쌓고 지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많이 했다. 23살 때 크림치즈로 찌운 살을 달리기만으로 10kg 이상 감량했고, 20대 후반에는 헬스로 15kg가량 감량해서 4년 정도 늘씬하게 지냈던 적도 있었다. 복싱과 무에타이도 잠깐 배웠다. 2022년에는 필라테스 1년 회원권도 끊었지만 의외로 시간 제약이 많아서 당근에 팔아버렸다. 이래 봬도 나름 운동한다고 돈 좀 쓰던 여자였다. 최근 몇 년간은 일상이 운동 그 자체였다. 장롱면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걸어 다녀야 했고, 봄/가을에는 생태강사로 산을 오르내리며 일하다 보니 운동 아닌 운동을 하며 지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숱한 음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덜 찌고, 버티면서 살았나 보다. 이제 덜 찌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살이 너무 무겁다 정말. 


 런데이 초급 과정의 목표는 쉬지 않고 30분을 달리는 것이다. 주 3회, 총 8주에 걸쳐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1주 1회 차는 달리기 1분과 걷기 1분을 반복한다. 서서히 달리는 시간을 늘려서 마지막 8주 3회 차에 쉬지 않고 30분을 달리는 것이다. 


 첫 달리기는 1월 4일에 했다. 초급 과정을 끝낸 날은 3월 22일. 그러니 약 12주가 걸린 셈이다. 생리한다, 애가 아파서 간호해야 하느라 시간 없다, 전날 술 마셔서 간이 피곤하다 등등  수많은 게으름과 난관을 헤치고 어찌어찌 끝내기는 했다. 그리고 단 1kg도 빼지 못했다. 운동은 간헐적으로 했지만 음주는 상시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식이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겨우 하루에 30분 달린다고(그것도 30분 내내 달린 것도 아니고) 살이 빠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체력은 좋아졌다. 건강검진을 하면 늘 빈혈이라고 나왔기에 철분제를 먹으면서 달리기를 병행했더니 2022년에 달리기를 했을 때보다 숨쉬기가 확실히 편해졌다(그때보다 더 천천히 달려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리고 체력도 좋아졌다. 그렇다고 일상이 달라질 만큼 좋아진 건 아니지만(다시 말하지만 하루에 30분 운동했다고 그리 급격히 달라질 수가 없다) 전보다 일상을 버틸 힘이 조금 더 생겼음을 느낀다.  


 새벽에 달리는게 제일 좋았다. 5시에 눈은 떠지지만 갈까말까하는 마음의 반란을 제압하고 침대에서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일어나서 세수도 양치도 안하고 바로 옷만 입고 나오면 5시 반. 달리기하는 트랙은 집에서 5분 거리. 새벽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바람도 시원해서(1,2월에는 좀 추웠지만) 달리기가 수월했다. 낮이나 저녁에는 사람들과 개로 붐비는 데다가 몸이 무거워서 달리는게 힘들었다. 밥먹고 한참 지나서 가도 몸이 무겁게 느껴져 새벽운동을 선호하게 되었다.  


 운동화는 쿠팡에서 산 2만원 가량의 프로월드컵 운동화. 거기 더해 무릎보호대를 사서 차고 달렸다. 무릎보호대는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2022년에 안하고 달렸다가 꽤 고생한적이 있다. 운동복은 집에서 입는 맨투맨 티셔츠와 동생이 회사에서 받았으나 안 입던 트레이닝복(회사 로고가 새겨진)을 활용했다. 초보자에게 고급 장비는 필요없다는게 내 지론이다. 


 12주간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이걸 끝낼 수 있을까였다. 이렇게 힘든데 다음번에 더 많이 뛸 수 있을까 의심이 되었지만 무슨 파블로프의 개 마냥 앱의 트레이너가(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가상 트레이너였지만) 뛰라면 뛰고, 멈추라면 멈추었다. 다행히 매번 성공했고, 그렇게 한계는 계속 미뤄졌다. 12주나 달렸으니 이제 30분은 가뿐히 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여전히 겨우겨우 뛰고 있다. 속도도 빨리 걷기보다 조금, 아주 조금 빠른 수준이다. 누군가 '지금 달리는 거 맞나요?'하고 물어봐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어쨌든 쉬지 않고  달렸다. 12주간 달리기를 했지만 달리기는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매번! 그래도 끝이 있음을 알고 있어서 달렸나 보다. 끝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끝내고 나니 다른 욕심이 생겼다. 


 초급 과정을 끝내고, 그러니까 30분 완주에 성공하고 나서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마라톤 대회를 검색하고 등록까지 했다. 친구에게 '언젠가 마라톤에 나갔으면 좋겠다'하고 지나가듯이 말 한적 있는데 진짜 등록을 한 것이다. 물론 풀코스는 아니고 5km로 말이다. 30분을 뛰니 4km가 조금 못 되었다. 그래서 40분만 뛰면 5km는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회까지 한 달여 남았으니 연습하면 충분히 될 거라고 낙관적인 생각도 들고. 


 의도한 건 아닌데 하필 숙취제거제 '여명 808'을 만든 회사에서 후원하는 대회라 '여명국제마라톤 대회'가 나의 첫 번째 마라톤 대회가 되었다. 술꾼에게 어울리는 마라톤대회라고나 할까. 대신 성공적 완주를 위해 한 달간 약 금주를 할 계획이다. 2만 원 내고 등록했으니 완주는 해야지. 




하반기에는 10km 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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