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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pr 01. 2021

2021년 작업일지 2

험난한 감자심기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아이들과 감자를 심는 날이다. 학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밭에 퇴비가 잔뜩 뿌려져 있고, 잡초도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퇴비는 흙 위에 뿌려놓고 잘 섞지 않아서 햇빛을 잔뜩 받은 퇴비는 만지자마자 과자처럼 바사삭 부서졌다. 아이들이 퇴비 냄새도 맡아보고(잘 부숙 되어서 흙냄새만 난다), 퇴비 모양도 보고, 퇴비 포대도 읽어보고, 직접 무게를 재서 뿌려보고, 호미를 가지고 풀을 뜯게 하려고 했는데 수업계획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나중에 어느 선생님이(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렇게(?) 해놓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전에 이야기하셨다면 뭐라고 답이라도 했을 텐데 일방적으로 해놓으셔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황당스러웠다. 그 선생님을 직접 만나게 됐을 때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일부러 놔둔 것이라고 하니 '선생님이야 심기만 하면 되죠' 하시는데 도대체 텃밭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싶었다. 텃밭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수업인데, 그저 작물을 심고 물 주고 키우는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 일을 덜어주려고 호의로 하셨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 이미 벌어진 일이라 뭐라 하기도 뭣하고, 나이도 훨씬 많으셔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감자 심을 곳에는 이미 열흘 전에 퇴비를 뿌려놨는데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듬뿍 뿌려놔서 작업일지 쓰는 것도 무의미해졌다. 데이터가 중요한데...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는가. 가장 큰 문제는 수업내용을 다시 짜야한다는 거다. 당분간 흰머리가 팍팍 늘 것 같다.  

 씨감자 주문도 문제였다. 학교에서 쓰는 재료는 내가 직접 살 수가 없다. 열흘 전에 필요하다고 담당자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나는 메일을 보냈다고 연락을 안 했고, 그 선생님은 메일을 늦게 확인해서 결제가 늦어졌고, 덩달아 주문도 늦어져서 금주 월요일에나 주문이 들어간 것 같았다. 수요일에 수업해야 하는데 말이다. 다행히 수업 전에는 도착을 했는데(정확히 언제 주문을 했고, 언제 도착했는지는 모른다) 싹을 틔울 시간이 없었다. 싹이 조금씩 난 상태여서 안심했다. 

 학교와 계약을 하고 일하다 보면 행정 시스템상 불편한 점이 좀 있다. 텃밭 수업을 하다 보니 그럼 점을 보완할 사업 아이템이 떠오르긴 했는데 그건 뭐 차후에 논하도록 하자.  


수미 씨감자. 알이 작다.


 락스 희석한 물, 과도, 삶은 행주를 준비해 갔다. 아이들은 칼을 락스 물로 소독해서 행주로 닦고, 감자를 1/2로 잘랐다. 감자가 애매하게 작아서 1/2 등분을 했다. 비슷한 크기로 자른 아이들도 있었지만 한쪽을 유별나게 크게 자른 아이들도 있어서 감자의 크기가 들쭉날쭉했다. 가져간 재를 묻히게 하고 직접 10~15 센터 구멍을 파서 심도록 했다. 가족 중에 한의원에서 일하는 분이 있어서 뜸을 뜨고 난 재가 집에 많다. 인터넷으로 뜸 재로 소독해도 되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서 이번에 내가 처음 실험을 해본다. 락스물과 재를 사용하는 이유는 바이러스나 균을 막기 위해서이다. 즉, 소독용이다. 


뜸뜨고 난 재


 뿌린데 또 뿌린 퇴비, 싹을 제대로 틔우지 못한 데다가 크기가 제각각인 감자, 뜸 재. 이 세 가지 변수가 감자 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4월 중순이면 싹이 올라올 테고 그러면 확인이 가능하다. 50%는 건져야 할 텐데.. 혹시나 해서 작은 감자 6개를 더 심었다. 알이 작아서 그냥 심었다. 1/2 등분한 12개와 1알짜리 6개. 힘내라 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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