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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시

님아, 이 거울을 깨고 나가지 말아

by 새벽바다

거울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젊은 새 한 마리.


거울 바깥에

독수리 대장의 앞에서

온화한 미소로 팔을 휘적거리는

오색 깃털 꽂은 새 한 마리.

펄럭- 펄럭-

“우린 하나의 둥지에 살지요.

대장 아래 우린 동지입니다.

지푸라기와 먹이를 구하러 갑시다!"


새를 바라보고 있는

거울 속 새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장은 지푸라기도 먹이도 잘 모른다며?

저들은 둥지를 간섭하고, 통제한다며?

지푸라기나 먹이 말고, 깃털이 중요하다며?"


거울 안을 보지 못하는 새가

다시

펄럭- 펄럭-

“우린 하나의 둥지에 살지요.

저들은 동지가 아닌 적이지요.

그러니, 저들의 말을 곧이 따르지 말아요.

모든 것을 알리지 말아요.

동지가 아닌 적이니까요.”


평화를 가장한 동굴 속 비밀회의.

조용히 펼쳐지는 사상의 단속.

오색 깃털 꽂은 새의 팔이

은밀하게 펄럭거린다.


새야, 새야,


내 눈에 문득

바람 부는 날 두 겹으로 붙은 깃발이 보인다.


펄럭이는 앞 면은 치열하고 긴박한 독수리 대장의 신호.
그림자 같은 뒷 면은 열등감으로 뒤틀린 한 마리 새의 사상 선전.


새야, 새야,

그 깃털이 너의 것이니?


거울아, 거울아,

오래오래 순응할 수 있겠니?


윗동네 완장 찬 황새 앞에서

허둥지둥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는

나이 든 새 한 마리.


거울 속 새의 오색 깃털을 빼앗아 꽂고

독수리가 없는 틈에 팔을 마구 흐느적 거린다.


펄럭- 펄럭 -

"여긴 꽤 괜찮은 둥지예요.

지푸라기는 윤기 나고, 먹이도 가득 모았죠.

사실은 나와 내 부하가 만든 둥지이죠."


거울 속 새가 그 모습을 바라본다.

거울아, 거울아,

살그머니 -

새의 한쪽 날개가

거울 밖으로 불쑥 튀어나오려 하니,
나이 든 새는

두더지를 잡듯

뿅망치를 뿅 하고 내려친다.


거울아, 거울아,


거울 속 새가 날아가는 대장 독수리를 바라본다.

오색 깃털을 빼앗아 꽂은 나이 든 새도 바라본다.


그러다

거울 바깥세상을

하나하나 조각내어

일곱 빛깔 무지개로 데칼코마니를 한다.


"괜찮아, 뿅망치를 맞아도

무지개는 있으니까."


그렇게

헛헛한 미소를 띤 인형처럼,
살랑살랑 흐르는 해파리처럼,

허허실실 살아갈 수 있으려나.


거울아, 거울아,


마지막으로 다짐해.


안 되지, 안 되지,


이 거울을 깨고 나가지 말아.


이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펄럭- 펄럭-

허허실실 날갯짓을 성실하게 따라 하자.


그리고

살금살금 먹이를 찾자.


그렇게

이 둥지를 버티자.


이 둥지를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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