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어떤 모래성에 갇혀 있었어.
그는 내게 말했어.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견고한 약속처럼 들려오던 그의 말도
파도 한 줌에 무너져내릴 모래성이었어.
모든 시간은 오직 ‘지금’으로만 유효해.
그러니
당신의 ‘나중’은 포장지더라.
벗겨보니 유통기한이 지났어.
견고한 모래성은
새벽 파도 한 줌에 무너지고,
그제야 나는 알았지.
진짜 전쟁은 그와의 다툼이 아니라,
그를 믿고 싶은 나와의 싸움이라는 걸.
그렇게 마음을 무너뜨리니
드디어
전쟁 같던 평화가 종결됬어.
마침내 나는
나인 채로 숨 쉴 수 있는 지금에 도착했지.
나는 도착했어.
당신은 어디쯤이야?
여전히
'나중'에 머무르고 있어?
기약없는 그 '나중'의 시간속으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그 곳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그땐
그땐
그땐 내가 먼저 말할게.
당신이 버릇처럼 말했고,
내가 습관처럼 싫어했던 그 말.
"잘 지내."
모든 문제는
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파도 한 줌에 허물어지는
견고한 모래성일 뿐이야.
바깥 세상 소란스러울 때
진실은 더욱 또렷해지지.
그 모든 전쟁은 결국
다 늙은 닭들의 모이 쟁탈전.
허공에서 깃털 몇 개 흩날리다 끝나는 볼썽사나운 쑈.
그 쑈가 진짜인 줄 알고 흐느적거리며 분노하는
모든 어리석은 중생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는 밤,
누군가 나 대신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번뇌가 목덜미를 쥐고 놓지 않을 때,
다행히 천국의 문은 삐그덕 - 소리내며 열리곤 했어.
그 문 사이로 새어 나온 작은 햇빛 한 줌에 감격하며,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신에게
“그럼에도 고마워요”라며 무진 애를 쓰지.
그 안간힘.
바로 그것이 이 전쟁을 끝낼거야.
모래성은 결국 무너질테고
당신도 알게 되겠지?
그 모든 문제들이
실은 서커스의 유치한 단막극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