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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21. 2020

지옥 같은 밤(2)

휴직 144일째, 민성이 D+393

민성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아이가 아픈 건 오롯이 내 탓이다. / 2020.09.19. 군산 은파유원지


민성이가 아픈 건 온전히 내 잘못이다. 100% 내 탓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실수는 부모인 내가 했는데, 피해는 아이가 봤다. 뒤늦게 책임을 지려고 해도, 대신 아파줄 수도 없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복기할수록 내가 어리석었다. 나흘 전, 민성이가 접종 주사를 맞은 지 두 시간 만에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다. 평소보다도 더 격하게 놀고, 그 모습을 찍어 아내에게도 보냈다. '아들은 유격 훈련 중'이란 문자와 함께(돌격 앞으로!).


심지어 그 날은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놀이터에 괜히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다. 아이는 가랑비에 조금씩 옷을 적셔가며, 주사를 맞은 허벅지로 힘차게 놀이기구를 오르내렸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참 통목욕을 시키는데 그제야, 불과 몇 시간 전에 아이가 접종을 맞았단 사실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 뭐.' 민성이는 그 날, 평소처럼 잠이 들었지만, 몸속은 평소 같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도 조심했어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가 38도만 돼도 몸을 극도로 사렸을 텐데, 약을 먹였으니 금방 열이 떨어지겠거늘 했다. 단 한 번에 불과한 어설픈 경험이 독이 됐다(접종이 제일 쉬웠어요?).


지난 주말 부모님과 유원지 식당에 갔을 때, 민성이는 또다시 계단을 오르내렸다. 나는 민성이가 밖에서 신발을 신고 걸음마를 했다는 기쁨에 취해, 아이 몸 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달이 났다. 10kg 남짓한 아이 몸 안에선 항원에 맞설 항체를 만들기만도 버거웠을 텐데, 밖에서는 철없는 아비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안팎으로 아이의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테다.


어제(20일) 소아과 원장님은 접종 이후 열이 48시간 넘게 지속되는 걸 보면, 접종열은 넘어선 것 같다고 했다. 감기일 수도, 혹은 다른 감염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아이 몸이 약해져 있는 게 원인이 됐을 것이다.


민성이는 어제도 종일 열이 났다. 40도까지 오르진 않았지만 계속 39도대에 머물렀다. 어젯밤엔 아내와 나는 이불과 베개를 들고 아예 민성이 옆에 누웠다. 아이는 열이 오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곤 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날 놀이터로 돌아가 내 뺨을 때려주고 싶다. 부모의 무게는 생각 이상으로 무거웠다. 한순간 나의 오만과 방심이 아이를 며칠간 아프게 했다. 이번 일이 올바른 시행을 위한 착오라도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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