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8일째, 민성이 D+267
아침 일찍, 아버님이 계신 용인 수목장 숲으로 향했다. (그가 없었으면 아내도, 민성이도 없었다) 그의 묘비가 잘 나왔는지 확인하고, 무엇보다 약속대로 손자 민성이를 보여드리기 위해서였다.
형형색색의 조화가 만개한 그곳에서, 예상대로 민성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아버지 잘 보시라고, '민성이' 턱받이까지 한 8개월 아이의 천진난만함 덕분에, 밝은 분위기에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아내는 서울 집에서 멀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경북 영천에서 나고 자란 아버님껜 생소하실 테지만, 두 딸과 가까운 곳에 모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한 곳, 잘했다 싶었다.
훗날, 우리도 수목장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와이프는 자신이 먼저 떠나면 남은 내가 민성이에게 민폐를 끼칠 게 너무 뻔하다면서, 본인이 남아 내 장례를 치르고 부부의 마지막 정리를 하고 가겠다고 했다.
분명 민성이 낳기 전엔 자기가 먼저 가겠다던 그녀였다. 남아있는 사람이 더 힘든 거라고, 그러니 나보고 남아 있으라고 했다. 나는 정리를 다하고, 딱 1년 있다 따라가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었다. 아이의 힘은 참 대단하다.
사실 아내는 아이를 낳겠단 생각이 크지 않았다. 연애 때도, 결혼 초기에도 '안 낳겠다'라고 못 박진 않았지만, '아이가 있는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게 그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결혼 4년 차, 아내는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가 갖고 싶어 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아이는 선물로 낳아줄 테니, 키우는 건 오빠가 다 해"라는 말이 그때 나왔다.
그랬던 아내는 민성이를 낳고 그의 '사생팬'이 되었다. 나보다 몇 배는 더 아이를 안아주고, 몇 배는 더 아이와 놀아준다. 267일 동안 나는 그녀가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내는 아침 일찍, 아버님 집을 비롯해 그의 마지막 정리를 하러 영천에 내려갔다. 그녀의 슈퍼스타 강민성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빠를 기쁘게(?) 하고 있다. 벌써 민성이를 그리워하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