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15일째, 민성이 D+464
"민성아, 오늘 아빠 말 잘 들어야 돼?" 출근하기 전, 아내는 품 안의 민성이를 바라보며 몇 번이나 말했다. 어린이집이 휴원하고 첫째 날이 지났다(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예상대로 긴 하루였다.
엄마 말을 알아들었는지, 민성이는 제법 아빠 말을 잘 들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도 그리 떼를 쓰지 않았다.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헤집어놓긴 했지만, 평소 수준이었다.
아이가 보채지 않으니 나도 그렇게 바쁘진 않았다. 가만히 앉아 아이가 노는 걸 지켜보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간식을 챙겨주면 그만이었다. 다만 조금 답답할 뿐이었다. 당분간 내 시간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민성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휴직을 막 쓰기 시작했을 땐, 종일 아이를 보면서도 시간을 꽤 잘 보냈다. 그땐 일주일에 한 두 권씩 책을 읽었다. 그중엔 두꺼운 책도 있었다. 그땐 그게 됐다.
일단 아이의 기동력이 형편없었다. 열심히 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었다. 손을 뻗어도 닿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아이를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달려와 식탁 위의 물건을 낚아채는 수준이다.
적어도 그가 내 옆에 있는 순간 독서는 이제 사치다. 눈은 봉쇄됐지만, 다행히 귀는 아직 자유로웠다. 아내가 출근하자마자 라디오를 틀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 세계엔 나와 민성이만 있는 게 아니야.
어린이집엔 가지 않았지만, 아이 스케줄은 어린이집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10시쯤 오전 간식을 줬고, 집 앞에서 간단히 산책을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웠다.
써놓고 보면 한 문장에 담길 만큼 간단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민성이는 낮잠을 자기까지, 수없이 내 몸을 오르내리고 이마를 때렸다. 안 자겠다는 거다. 그러다 아이는 겨우 1시간을 잤다.
물론 즐거운 일도 있었다. 오전에 세탁기를 돌리려는데, 어느새 민성이가 다가와 빨래통에서 옷을 꺼내 준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빨래를 했다. 난 이 귀여운 15개월짜리에게 언제까지 이용을 당할 것인가. 이제 하루 지났다. 끝은 알 수 없다. 마음 단단히 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