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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08. 2021

눈 떠보니 어버이

휴직 373일째, 민성이 D+622

 

'엄마 아빠, 민성이가 사랑해요♡' / 2021.5.7. 어린이집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는 걸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어린이집 입구에 들어서면서 깨달았다. 그곳엔 내가 잘난 건 아빠를 닮아서, 내가 예쁜 건 엄마를 닮아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가? 민성인 나보다 더 잘난 거 같은데.


벨을 누르니 가슴엔 초록색 리본을, 머리엔 빨간 머리띠를 찬 20개월 강민성 꽃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꽃은 내게 안겼다. 아이를 내가 데리러 와서 다행이었다. 심장이 약한 아내는 차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부모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연신 셔터 소리가 울렸다.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거닐면서 아들 꽃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날씨였다. 미세먼지 농도가 600을 넘어섰나 그랬다.


"오늘 엄마 일찍 온대." 민성이를 어르고 달래며 황사를 뚫고 집에 들어왔다. 아내는 평소보다 2시간 일찍 퇴근했다. 집에 꽃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금요일이라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하늘도 뿌옇고.


아내는 밝은 얼굴로 그녀의 첫 어버이날 선물을 끌어안았다.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내가 머리띠를 두르고 저랬으면 분명 집에서 쫓겨났을 텐데. 얼굴은 비슷하지만 대우는 참 천차만별이다.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이 나서 오랜만에 키즈 카페에 갔다.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장난감 차가 키카 한쪽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민성이는 1시간을 그 앞에서만 보냈다. 뭐, 말이 어버이날이지, 사실 어린이날이다.


서울에 있을 때 어버이날엔 부모님에게 꽃이나 용돈을 보내드렸다. 주말에 내려가서 밥 한 끼 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받은 사랑에 비해 드리는 사랑이 늘 부족했다. 


그래서 늘 죄송했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나도 어버이가 되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그렇게 돼 있었다. 어버이가 돼보니 어버이의 마음이 조금 보인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더라. 


민성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가장 큰 어버이날 선물은 아이가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라 주는 거다. 그리고 분명, 나의 어버이도 그랬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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