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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09. 2021

효를 다하였다

휴직 374일째, 민성이 D+623

'엄마, 바로 저예요. 제가 어버이날 선물이랍니다!' / 2021.5.7. 우리 집


우리 부부가 어버이로서 맞이한 두 번째 어버이날, 아내는 민성이를 보고 효를 다했다는 말을, 온종일 입에 달고 살았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세 살, 만으로는 고작 20개월, 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 아이는 효도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그야말로 효도의 천재인 셈이다.


물론 어제(8일) 민성이의 컨디션이 대체로 좋긴 했다. 이틀 연속 몰아치는 황사에 밖에 나가 몸을 제대로 풀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다.


어제 우리는 민성이를 데리고 부모님과 외식을 했다.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내 어버이 가운데 한 명인 엄마의 요청에 따라 우리는 근처에 새로 생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았다.


(예전에 가 본 적 있는) 별도의 룸이 딸린 한식이나 일식집이 아닌, 손님 대부분이 젊은 사람이었던 아기자기한 파스타집이었는데도, 민성이는 우려와 달리 얌전히 유아용 의자에 앉아 밥을 아주 잘 먹었다. 


앞서 그는 아침밥도 집에서 두 그릇이나 뚝딱 해치우고 왔다. 생후 20개월 아이의 하루라는 게 먹고, 놀고, 자는 게 전부인데, 이미 두 끼의 식사를 훌륭히 마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민성이는 아내의 등에 업혀 곧바로 곯아떨어졌고 그 길로 두 시간 가까이 낮잠을 잤다. 도중에 한 번 깨서 찡얼거리긴 했지만, 아내가 품에 안아 달래주니 큰 투정 없이 다시 잠들었다.


자고 일어난 민성이는 아내와 내가 그의 옷 정리를 하는 동안 옆에서 얌전히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아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매우 수월하게, 이제는 너무 작아져버린 그의 옷가지를 솎아낼 수 있었다. 


아이는 어렸을 때 평생의 효를 다한다는 건, 아내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지금이 가장 예쁘고, 이때가 지나면 속 썩이는 일만 남았다는 걸 테지.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효를 다하는 시점이 언제였더라. 별로 안 남았던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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