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78일째, 민성이 D+627
"오빠, 날씨 너무 좋아." 어제(12일) 정오가 좀 지나서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밥 먹고 잠깐 산책을 나왔는데 날이 너무 좋더란다.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왼뺨과 어깨 사이에 전화기를 끼워 넣고 빨래를 널며 생각했다.
아내 말대로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아니 그보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올해 들어 처음 반팔과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어느덧 5월 중순, 반소매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북적였다. 비 때문이든 미세먼지 때문이든, 날이 흐렸던 그제와 그 전날에 그들은 모두 어디 숨어있었던 걸까.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온 걸까.
날이 다시 더워지고, 작년 여름내 입었던 반소매 옷을 입고 걸으니, 괜히 옛 생각이 난다. 1년 전, 여름의 문턱에서 나는 생후 8개월인 민성이와 둘이 종일 집에 있었다(한 바퀴 돌아, 다시 여름).
그때 그는 하루에 밥을 다섯 끼인가를 먹었고, 낮잠은 두세 번씩 잤다. 잘 걷지도 못할 때라 산책을 나갈 땐 늘 유모차에 아이를 태웠고, 그 산책길에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게 하루의 유일한 낙일 때였다.
그로부터 1년, 민성이는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나를 앞질러 뛰어간다. 사실은 아이 스스로 자란 거지만, 그래도 저 뜀박질에 내 피와 땀도 약간 기여했으리라 생각하니 나의 1년이 조금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민성이는 밖에서 1시간 정도 놀다 귀가했다. 그리고 집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씻을 때도 비교적 얌전했다. 아내가 늦게 퇴근을 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다만 잠들기 전, 민성이는 엄마를 많이 찾았다. 엄마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회식하는 날이 있다고 얘기해줬지만 그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고 싶을 때 엄마를 볼 수 있느냐, 중요한 건 단지 그뿐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여름이다. 민성이는 바뀐 것도,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엄마를 향한 사랑은 바뀌지 않은 것 중 하나다. 이 여름이 한 번 더 지나가도 그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민성이는 어제도 구슬피 엄마를 목놓아 부르다 잠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