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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11. 2021

아빠의 템플 스테이

휴직 407일째, 민성이 D+656

'아빠, 안아주세요. 얼른요!' / 2021.6.9. 아파트 단지


우리 가족의 평일 저녁 풍경은 이제 거의 비슷하다. 민성이 밥을 미리 먹이지 않고,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세 가족이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틀이 어느 정도 잡힌 듯하다.


민성이가 4시쯤 하원하면 나는 아이와 밖에서 1시간, 안에서 1시간 정도 논다. 아내가 6시 좀 넘어 퇴근하면 나는 곧장 밥을 차린다. 세 가족이 밥을 다 먹으면 보통 7시쯤 된다.


내가 주방을 정리하는 동안 아내는 민성이를 씻긴다. 그렇게 또 30분이 지나고, 내가 민성이를 보는 동안 아내가 먼저 씻는다. 그녀가 아이를 재우다가 그대로 잠드는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보통 8시, 이제 민성이가 잘 시간이다. 이때쯤이면 밖도 꽤 어둑어둑하고, 집 안에도 불이란 불은 모두 꺼져있기 때문에(불을 끄려는 자와 켜려는 자) 아이도 큰 저항 없이 책을 들고 침실로 향한다.


민성이는 빠르면 8시 반, 늦으면 9시 정도에 잠이 든다. 그때부터 이제 아내와 내 자유시간이다. 예전엔 둘이 배달음식에 술을 곁들여 '육퇴'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술을 잘하지 않는다.


예전엔 아내가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돼서 저녁을 차리기 싫을 때가 많았다. 그 직전에 민성이 밥을 먹이고, 그걸 또 치우는데 에너지를 몽땅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성이를 재우고 나서 아내와 둘이 배달음식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겸사겸사 반주를 곁들였던 것이다. 육아 스트레스도 풀 겸 해서. 일주일에 반 이상은 그랬던 것 같다.


술이 준만큼 몸은 좋아졌을 것 같은데, 육아 피로는 덜 풀리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비슷한 밥을 먹고,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 뭐랄까, 약간 템플 스테이 느낌이다.


어제저녁, 이 절간 생활 때문인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인지, 아니면 평일의 가장 큰 고비인 목요일이라서 그런지 나는 축 쳐져있었다. 뭐, 늘 통통 튀는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번 주말엔 술 좀 마셔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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