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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an 13. 2022

여가부 폐지?  윤석열이 삼킨 트로이 목마!

여가부 폐지 공약은 윤석열 후보의 정치적 자살행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가부 폐지 공약은 윤석열의 정치적 자살행위다.


이제 그 이유를 말하겠다.


사회학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정치학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어떤 주장을 하는 개인이나 특정한 정치인을 무작정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한국의 20대 대통령 선거가 3달여 남은 시점이고, 두 야당의 후보에 대해서 여러가지 비판과 옹호들이 오가고 있다. 특정 후보를 '후보가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글들은, 소위 말해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글들은 선거가 끝나면 쓸모가 없어진다. 승패를 위해 쓴 글이, 승패가 끝나버렸기에 효력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단지 누군가의 당선을 돕거나 방해하는 글을 쓰지 않는다. 적어도 그럴 의도로는. 물론 나는 그런 글이 가치있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네거티브 전략(흑색 선전)이 공론장에서 그다지 신사적이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정치적 재앙을 막기 위하여 도덕적 우회로를 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에서 경쟁하는 상대가 파시스트라면 - 예를 들어서 아돌프 히틀러라면, 그 때도 우리는 흑색 선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목적을 위해서 수단이 정당화되지 않지만, 그 목적보다 훨씬 상위 단계의 윤리를 지키고 피해를 방지해야 할 절박함이 우리에게 왔을 때, 그 하위 단계의 윤리적 고려는 '상위 윤리(윤리목표)에 의해 경쟁적으로' 밀려날 수 있으며, 상위 윤리가 주로 무엇을 지키는지(인권, 생명, 민주주의, 자유)고려해 본다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해 글쓰지 않는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라는 정치계의 핵심 금언처럼, 어차피 후보 개인은 시간에 따라 계속 교체되기 마련이다. 2022 현재 우리가 앞두고 있는 20대 대선(이재명과 윤석열의 경합)은 어차피 3월에 끝날 것이고, 이 경쟁은 마치 공중에 뿌려진 반짝이는 파티 가루(콘페티)처럼 화면을 어지럽게 메우다가도 순식간에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가라앉지 않는 것은 정책이다. 그리고 정책이 해결해야 할, 또는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타겟 문제'다. 사람은 아무리 승승장구하는 대통령이라도 5년 뒤에는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인간이 불편감을 느끼는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 한 그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정책의 맥락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관해 글쓰는것이 장기적으로는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대신 사람이 바뀌더라도 진짜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한 패턴을 가지고 꾸준히 제기될 '정책'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번에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율이 밀리는 문제를 만회하기 위하여, 여성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남성 층의 득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라는 7글자 공약을 올렸다. 나는 윤석열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런 삶 -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 어떤 정치적 원칙과 소신도 없이 인구 많고 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다 들어주는 삶 - 은 아직 많이 불완전한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어떤 불운한 일원이라면 누구나 살아볼 수 있는 종류의 인생이다. 그런 사람에 대한 비난은 그야말로 시간낭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윤석열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인플루언서이자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말한 발언으로서의 "여성가족부 폐지" 라는 말은 굉장히 도덕적 · 정치적 · 정책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것은 단지 윤석열 후보의 소신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지난 수 세기동안 이어져 온 증오 정치의 한 가닥이고, 그 가닥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중요한 정책대상 (여성, 청소년, 다문화)이 의지하고 있는 정책 체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발언의 형식(증오 선동의 정치)과 정치적 발언의 내용(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 모두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시민 안전에 대한 훼손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이 트위터의 맥락이 제거된 외침보다도 못한 한 마디를 통해 윤석열 후보는 지지율 수급에 성공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지지율을 끌어모은 것만은 아니고, 20대와 30대 남성들을 정밀 타겟팅한 몇 가지 전략이 있었다. 이에 관하여서는 최병천 민주연구원 부위원장이 작성한 다음 글을 참고하라 : 『대선의 ‘3번째 국면’이 열리다 - 윤석열의 ‘캠페인 수준’이 확~ 달라지다.』링크) 한 나라의 법적 · 제도적 · 윤리적 측면에 대하여 누구보다 세심하고, 복합적이며, 예민하게 접근해야 할 대통령 후보가, 이렇게 트위터나 나무위키 게시물만도 못한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공약으로 여성에게 박탈감을 느끼고 여성정책에 반감을 느끼는 젊은 남성들을 선동하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 같은 선동가들이 즐겨 하던 극우적인 죄악이다.


윤석열 후보는 20대와 30대 남성이라는 부동층 공략을 위해서, 밈(meme)이라는 '방식'과 증오/혐오(hate speech · misogyny)의 '내용'으로 건설적이지 못한 2030의 하위문화(sub-culture) 유통의 방식을 따라, 한국사회가 합의한 품격과 공공성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선거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선거는, 여러 그룹의 서로 다른 입장들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정치적 이끔이(리더)를 선출하는 행위가 아니다.


윤석열 후보는 지금 가장 나쁜 방식의 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여성 증오에 반응해주면, 내가 남을 증요하는 마음을 정책으로 구현해서 '집에서 애낳고 밥이나 하면 좋겠을 저 시끄러운 무임승차자년 새끼들을 국가가 나서서 군대에도 처넣고 사회보장정책도 끊어버리고 임금격차와 경력단절이 확실히 나타나게끔 하여튼 체계적으로 조져 주면' 내 1표를 주겠다는 악마의 거래에 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거인가? 이것은 선거가 아니고, 캠페인도 아니다. 일부 2030 남성이 여성을 사회적 주체로 다시 살려내는 보조정책을 증오하기 때문에, 여가부 폐지라는 당근을 주면 자신에게 투표라는 반대급부를 제공하니까, 그냥 '쪽수 많고 표 많이 주는 인구집단 말 들어주는 사람'을 뽑는 거라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도대체 그것을 왜 관용구로서라도 '정치 지도자'라고 부르는 것인가? 그게 우리들을 지도하는 사람인가? 그건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내가 성공할 확률에 따라 말과 태도를 바꾸는 '빅데이터 사념체' 또는 '사념체가 된 빅데이터'다.


'정치 지도자'?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지도'해 줄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정책철학이 없이, 이렇게 하면 표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대중의 지도를 받는 사람이 왜 정치 지도자인가? 정책철학과 브랜드가 없는 정치인은 지도자가 아니다. 내가 '우리 모두가 국방세를 추가로 분담해서 40만개의 연봉 5000만원짜리 일자리 뉴딜 사업을 진행하는셈 치고 연간 20조원만 추가 편성해서 정의로우며 적정 연봉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모병제로 전환하자'라고 10년째 주장해오듯이, 그 사람이 꾸준히 주장하는 정치 철학과 그 철학이 반영된 한 사람의 '정책브랜드' 혹은 '꾸준글'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치적인 어떤 단단한 기조가 없는데, 그 사람이 왜 정치적 지도자인가? 한국에서 가장 품격높고 배울 점이 많은 스승님을 대통령으로 삼아도 모자랄 판에, 표에 따라 정치적 소신을 엿가락처럼 굽히는 인간으로부터 도대체 뭘 배울 수 있기에, 그를 모두를 지도할 만한 좌석에 앉혀야 하는가?


윤석열 후보가 자꾸 이런 식으로 자기 정책의 일관성 · 정치철학의 가치지향이 모두 와해되었음을 보여줄수록, 윤석열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는 여러 주체들의 정치적 신망은 떨어질 것이다. 즉, 누가 생각해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명백하고 납작한 포퓰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지 포퓰리즘의 혐의만 받는가? 절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입에 올렸다는 것은, 당해 정부부처가 정책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2500만명의 여성, 854만 명의 청소년, 40만 명의 학교밖청소년, 109만 명의 다문화/이주민 가족, 1400만 동거가구에 대한 공적 보조와 사례관리를 끊고 정부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내쫓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저 수많은 사람들을 배신하고, 윤석열 후보가 단 한 번의 당선을 위해 손잡은 사람들이 누구인가? 인터넷 남초 사이트에서 마치 네오나치처럼 징그럽게 성장하고 있는 20대~30대 극우 청년들 - 즉, '이대남'들이다. 일베 · MLB파크와 같은 인터넷 남초 사이트에서 실제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왜곡된 '사회학'과 '사회적 현실'을 배운 이 일부 한국남성들은, 성차별과 임금격차와 같은 사회학적인 주요 주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결손이나 아픔을 공동체가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사회복지의 숭고한 이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군복무 트라우마를 모병제 추진으로 승화시키는 대신에 '여자도 군대가라!'는 분풀이로 전락시키고 그것이 자신이 군대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줄 것이라 자위한다.


이런 무지성 극우주의의 불길에는, 지식인들의 '과교정(over-correction)'된 겸손의 태도 또한 기름을 끼얹는다. 마치 지리멸렬한 무력감을 견디다 못해 발작적으로 갑작스럽게 우파의 목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의 신경증처럼, 일본제국의 태평양전쟁에 감화되어 대동아전쟁 찬양 시를 쓴 미당 서정주처럼, 내가 '언더독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 피억압 마이너리티들의 메이저리티에 대한 '공감 격발'에 시달리는 남성 지식인과 일부 여성 지식인은, 자꾸만 그리고 갑작스럽게 이 '이대남'들을 이해해줘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고 이제 더 들을 새로울 이야기가 없어서 이제 반대 측 이야기도 들어볼 차례라고 할지라도, 이 '이대남'들로부터 무슨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건덕지가 있을지는 또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이 '이대남'들 자기부터가 자신보다 훨씬 못 사는 사람들을 이해해주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할 것인가? 영미와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는 네오 나치, 스킨헤드 족, 인셀 테러리스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와 슬픔이 있다. 그들도 사실은 외롭고 자괴감이 들어서 눈물로 베개를 적실 것이고 자살 생각도 할 것이고 외로운 타지에서 엄마가 보고 싶을 것이다. 아마 1차대전 이후 나치즘에 열광하던 독일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결핍과 아픔과 억울함이 있으니까 그것을 보상해 주고 누가 국가의 적인지 확실히 규정해주는 선동에 찬동했겠지. 그래서 우리는 나치의 억울함도 이해해주면 되나? 나치가 유대인과 동성애자들, 집시와 소수민족들을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에서 기관총으로 난사할 때도 그렇게 말할 것인가? 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끼어서 힘들게 살았던 나치 국민 입장도 들어봐야지!


왜 우리 한국인들은 강자가 약자를 해하려 할 때 강자의 마음을 이해해보자고 하면서, 계속해서 존재했던 약자의 마음에 대해서는 읽으려고 하지 않는가? 심지어 진보 지식인들조차 '그래도 우리가 너무 욕하지만은 말구 이대남의 생각을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할 때! 여성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학교 밖 청소년과 가출 청소년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청소년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조건만남 성매매 청소년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결혼과 출산과 경력이 끊긴 40대 여성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결혼이민자 가족과 그 청소년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말 하는 사람은 왜 없냐는 말이다!


여자 못 만나는 게 한이고, 지 맘대로 섹스 못 하는 게 한이고, 내 일자리를 여자가 뺏어가는 것 같고, 내가 가기 싫은 군대를 여자가 안 가는 게 천추의 한이 되어버린, "정치 - 사회 - 경제적 판단력"이 나무위키, 인터넷 남초 사이트, 여성혐오 극우 유튜버들에 세뇌당함으로써 와해된, 젊은 일부 남성들의 표를 의식해서 여성정책 · 가족정책 · 육아정책 · 청소년정책 · 다문화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정부 컨트롤타워를 해체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제정신인가? 그리고 이것이 단지 실수가 아니라 정말 제정신으로 자행한 정치적 도박이라면, 도덕/윤리성을 떠나서, 정말로 잠깐 동안의 사상적으로 무균처리된 사고실험 속에서 생각해보건대, 이것은 보수 전체를 궤멸시킬 '윤리성의 트로이 목마'가 아닌가?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윤석열의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공약으로 인해, 윤석열은 여성가족부가 도대체 무엇을 얼마만큼 열심히 하는 정부부처인지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파문(excommunicado)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죄를 잊을지 모른다. 그러나 집단은 결코 죄를 잊지 않는다. 정치철학도 없고 공적 가치를 지향하지도 않는 표 몰이 정치를 할수록, 비록 단기적으로는 비교적 단일하게 결집된 '인터넷 2030 일부 남성 반여성주의 극우주의자' 들이 열심히 한국갤럽 전화를 받아서 기호2번을 눌러주고 윤석열을 도와주겠지만, 한국은 무슨 '이대남'말고는 다 정치적 패잔병들만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한국의 공동선과 공공성에 대해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침묵하는 시민들이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백그라운드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현장 전문가 집단의 존재도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성가족부의 정책집행과 함께 행동하며, 소중한 우리 아이들과 클라이언트들을 육성하고 있는 여성가족부 정책 그늘 안의 모든 사람들 -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청소년지도사, 교사, 강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는 경거망동을 지켜보며, 함께 조용히 분노를 씹어 삼키고 있다. 사람들은 자꾸 잊는다. 아니면 보고도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무엇을?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간들은 자꾸 여성가족부가 같을 여(如)자냐, 여자 여(女)자냐 하는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유치찬란한 입씨름을 하고 있지만, 여성가족부가 원래 '여성청소년가족부'가 될 뻔했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여성가족부가 관리감독하는 국가전문자격 청소년상담사3급, 국가전문자격 청소년지도사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청소년육성 필드에 머물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출범 당시, 우리나라 청소년육성 필드에 계신 청소년지도사/청소년상담사 분들께서 여성가족부를 '여성청소년가족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아쉽게도 최종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이쪽에 계신 분들이라면 잘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명칭만 이렇다 할 뿐이지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역할은 (앞서 간단히 언급했지만) 여성 · 가족 · 청소년 · 이주/다문화 · 직업재활 · 인권 · 국제교류 등을 포함하여 매우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즉, 여성가족부는 그 안에 괄호를 치고 <여성(청소년)(다문화)가족부>라고 늘여 불러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것… 아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청소년/다문화/이주민을 포함한 사회복지 전반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사실은 일종의 얼마나 결정적이고 핵심적인지 이해하고 있다. 남자라고 할지라도 여성가족부의 수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가족정책과 청소년정책 전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제도권 학교교육과 수능시험 입시교육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동안, 여성(청소년)(다문화)가족부는 국제청소년교류, 청소년봉사활동, 청소년수련 등 모든 청소년 관련 정책을 책임져 온 것이다. 아직 사람들에게 잘 와닿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주배경청소년, 다문화청소년, 중도입국청소년, 국제결혼 피해구조와 같은 글로벌 이주라는 범세계적 현상에 대응해왔다.


물론 비판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기에 여성가족부를 통해 시행되는 모든 정책이 완전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사회학자 이범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여성-가족부'는 여성과 가족을 커플링했다는 점에서, 즉, 여성을 곧바로 어머니와 가정 내에서의 역할과 등치시키는 근대적 관념의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여성혐오(misogyny)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양성' 평등 개념을 차용하여 양분화된 젠더 의미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기타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고, 가족복지정책(개입)의 관점에서 보수 학부모들 의견만을 어설프게 반영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의 파행적 운영과, 그 정책이 인터넷 여성혐오 마녀사냥의 좋은 연료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가부폐지론'의 기폭제로 이슬맺힐 때까지 내버려둔 안이함도 매우 안타까운 정치적 실책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철학자 김상봉이 '아나키스트들은 자신의 아나키즘을 실행하기 위한 또다른 정부를 필요로 할 것이다' 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여성(청소년)(다문화)가족부가 비록 '이성애규범 중심적 4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기존세계의 관념을 비교적 보수적으로 반복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책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비교적 선명한 대상자의 특성들은, 여성가족부가 현행 근대적 정부체계에서 얼마나 선진적으로 정책대상자들을 얼마나 잘 식별하고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성(청소년)(다문화)가족부는, 부처명에서부터 사업명에 이르기까지 명시적으로 누가 이 부처 복지서비스의 수혜자인지 정확하게 타게팅하며, 바로 그런 점에서,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페북 글에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후보가 '여성가족부 강화' 7글자 페북 글을 올린 것의 의미는 사실 별달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냥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의당의 성격을 건조하게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즉, 여성가족부는 <경제적으로 자립가능하고 범죄에서 안전한 중산층 남성> 이외의 시민 그룹에 대한 복지를 종합적으로 타겟팅 하는, 사회복지 전달체계 및 지역사회 안전보장 전담부처인 것이다. 당연히, 폐지는 절대 불가능하다.


'이대남'들은 어떤 장기적인 안목이나 거시적인 정책철학이 있어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여성가족부의 연간 예산은 단돈 1조 2천억원으로서, 이것은 한국 전체 정부예산의 0.2%를 차지하는, 27개 정부부처 가운데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매우 저렴한 부처이다. 만약에 어떤 악마가 여가부를 해체하고 여가부가 지원하던 모든 성폭력지원기관과 청소년지원기관 그리고 다문화가정 지원센터를 다 박살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해서, 이 나라에서 가장 소외된 약자들을 박살내고 1조 2천억원을 아끼면, 그 돈이 이대남에게 1/n로 뿜빠이 되는가?


남초 사이트 안 하는 (비교적 중립적인) 정치관찰자들은, 인간의 밑바닥이 생각보다 좀 더 저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셔야 한다. 반듯하고 협조적인 심성을 가지고 잘 교육받으며 성장한 당신이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순수한 졸렬함과 악랄함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 등 한국의 극우 정치인들이 자꾸 기웃거리는 남초 인터넷 사이트는 그 죄악이 수렴되는 하수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초 사이트의 '이대남 정서'를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꾸만 '이대남'의 젠더 쿼터 폐지니, 여성강제징병이니, 성폭력 무고죄 강화니, 스너프필름 필터링 폐지니 하는 이슈들에 '뭔가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한다.


이유 없다. 그것은 그냥 순수한 악이다. 당연히 여성가족부 폐지 담론도 마찬가지다. 지금 윤석열에게 열광해주는 '이대남'들은 오직 여성혐오 사이트의 주된 정동인 '여자 인생 좆되게 만드는 통쾌함'을 누리고 싶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란 말이다. 오직, 재미로. 오직, 여자 좆되게 하면 자신의 억울함이 풀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생각하지 못한 것은, 자신들이 아무리 그렇게 저주해봐야 여성가족부는 수많은 기본법과 특별법의 규정 하에서 작동하는 한국 정부의 공식 정부부처이고, 우리 한민족이 시대를 초월해 목숨을 거는 청소년 교육과 가정 보호 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매우 막중한 공공기관이라는 사실이다. 만약에 윤석열 후보가, 2030 극우 남성의 표심이라는 향기에 홀려 꿀떡 삼켜버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윤리적 트로이 목마'를 지금이라도 토해내고 여가부 앞에 가서 석고대죄라도 하지 않는다면, 여성가족부와 진짜로 함께 일하는 현직자들은 가만히 있겠는가? 여성은 가만히 있겠는가?


증오선동자들은 여성가족부에 반대하는 여성 40%는 강조하지만, 찬성하는 남성 30%의 의견은 결코 부각하지 않는다.


물론 일각에서는 자꾸 '여가부 싫어하는 여자도 있던데?', '여성도 여성가족부에 40%는 반대한다'라고 프로파간다를 갈겨댄다. 당연하지. 낙태죄에 찬성하고 호주제에 찬성하는 여성들도 그것이 막 어젠다로 떠오를 무렵에는 40%는 있었을 걸? 자기 민족을 배신하고 자기 계급을 배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젠더 공동체를 배신하고 자기 성별을 상대 성별의 노예 상태로 처넣고 싶어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자기 남친 입장에 과도하게 이입하거나, 여자가 남자 편 들어주면 주변 남자들이 신기해 하면서 열광해주니까 계속 그 '스키너의 사료 버튼'을 누르면서 순간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상관없다. 한둘이랴? 다시 말하지만, 자꾸 어리석음에 이유를 부여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파멸적인 정치 의견을 자꾸 존중하려 하지 마라. 여성가족부 폐지를 부르짖는 남성 혹은 여성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간에, 그것은 틀린 의견이다.


그들이 아무리 틀린 의견을 가지고 자신의 젠더와 공공선을 배신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여성가족부의 도움을 받고 자라왔다. 인지하지 못했을 뿐. 여성가족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고, 그 정책체계의 효능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폐지하겠다고 하는 대선 후보의 경거망동을, 아니 어떤 인간의 경거망동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자꾸 여자도 여가부 반대 40%이니 뭐니 해도, 여성가족부에 홈페이지에 가서 5개년 사업백서 PDF를 다운받아서 그런 사람들 눈 앞에 펼쳐주면, 명백하게 존재하는 사업의 내용과 체계적 보고서 앞에 별다른 저항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조차 들어가보지 않은 인간들이 여성가족부를 증오한다.


여성은 여성가족부에 적대감을 가질 '감정적인 적대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가족부 폐지에 응답한 40%의 '틀린 의견'은, 그냥 사실관계 확인 미비에 따른 의견이다. 옆에서 누가 자꾸 욕하니까 덩달아 없어져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겠지. 이것은 구글 검색을 생활화하고, 자기가 정치적 의견을 가지기 전에 근거자료를 찾는 연습을 하면 해소되는 문제이다. '정치적 의견을 갖기 이전의 인간' 혹은 '정치적 각성 이전의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본인이 강제징용/강제징병의 피해자면서 모병제를 어떻게든 도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보지도 않은 채 징병제에 찬성하는 남자들처럼,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꾸 그런 40%의 '정치적 의견을 갖기 이전의 인간'을 부각하면서, "여기 봐라, 여자도 싫어하잖느냐!"라고 선동하는 것은 나머지 60%의 수량화된 분노를 '맞짱 뜨지도 않고' 공짜로 묵살하려고 하는 비열한 프로파간다이다. 고작 선동과 날조로 남성들을 멍청하게 만들어서 먹고 사는 증오 선동가들이, 그들이 해치려 하는 복지대상자들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보건/복지/교육의 전문가들을 도대체 어떻게 당해내겠는가? 싸울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날조한다. 그들은 해당 써베이 내부에 어떤 나이대와 지역과 계층이 어떤 비율로 혼입되어 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소수의 의견을 강조할 때에도, 남성의 30%가 여성가족부 존치에 찬성한다는 사실은 부각하지 않으면서(그럴 때는 꼭 20대 남성만을 조사한 써베이만을 인용한다), 여성 중의 소수가 여성가족부에 반대한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정해진 결론으로 써베이를 악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얕은 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정책대상으로 설정하여 다종다양한 서비스를 공급받는 극히 폭넓은 수혜자들과 그 조력자들은, 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멀쩡히 동작하는 여성가족부를 흔들어놓으려 하였고, 누가 증오 선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정부의 보건복지전달체계를 찢어놓으려 하였는지 지켜보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해체하여 사회적 약자의 복지와 생명을 위협하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저열하고 더러운, 반동적이고 수구적이며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범죄적 정치 선동은, 열광의 대상이 사라진 시대에 자신의 비루한 삶의 의미를 내던질 수 있는 야만적 증오 스포츠가 제공하는 단기적 광기에 사로잡힌 어린애들의 마약 같은 마녀사냥 놀이이고 정치적 자기효능감의 거짓 공급처이겠지만, 결국엔 마녀사냥이 그들의 친척과 이웃을 몰살시키고 종국엔 마약이 그 자신의 심장을 찢어놓게 되듯이, 이 증오 페스티벌에 참여한 젊은 증오선수들은 예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번엔,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악감정도 없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이대남'들이 그 배틀로얄의 참가자인 것인데, 그들이 역사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는지 재미있게 살펴 볼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다. 기억하라. 개인은 죄를 잊어도 집단은 죄를 잊지 않는다. 결국 내 목을 매달기 위해 찾아오는 역사에 대한 죄를 어떻게 씻어낼 것인가?



증오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hoto by Brian Neises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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