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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n 14. 2021

긴 고백

나루시선, 39

긴 고백

- 취업준비생의 노래



                                                서나루





반나절은 먼 사람을 생각한다


끝나지 않기 위해 입을 떼지 않았다

헤어지지 않기 위해 만나지 않았다


진리라는 말이 그렇게도 좋았지

필요에 따라 갖다붙이는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사물마다의 그림자처럼 딱 하나니까


한 사랑에겐 하나의 노래가 주어져 있다

부르기 시작하면 끝까지 불러야 하는


긴 고백

그 애가 애인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나는 진공 압축 가방의

한여름 누비 이불처럼 몸을 말았다


혼자서도 매일 바닥을 닦고 

책상 앞에 가서

문헌들을 만들었다

한 줄의 근거를 위해 여전히 잊어야 했다

만나기 위해서는 몰라야 했다


소일거리에 하루가 금방 간다

그러다 가끔은 몰입해버릴 때도 있다

냉장고 소리가 멎을 때

문득 그아이 잊어버리는 순간이 제일 자유로웠어


원할수록 밀어내는 방어기제처럼

내가 쳐낸 그 차고 보드라운 복사지들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젖어있는지 알까

아무도 없는 집의 불을 켤 때

온 바닥에 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걔 생각을 훔쳐내서 세탁기에 던져도

해가 뜨기 전에 기어이 

누군가 물 한 컵을 놔두고 갔다


미우나 고우나 거실에는 그것들이 춥게 앉았다

너희만큼은 쓸쓸하지 말거라

근거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이것은 기사 자격증, 이것은 기능사 자격증

미래를 지키는 기사 가문이 

내가 고쳐 앉는 방향으로 도열해 있다











Photo by Guzmán Barquí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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