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일찍 잠에 들고 푹 잤다. 몸과 마음이 다 풀어진 채로 기지개도 늘어지게 켰다. 닭 우는소리에 남은 잠을 털어냈다. 아파트로 둘러싸였어도 닭 우는소리가 연하게 들린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나는 거기가 어디쯤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차들이 다니는 시내에서 무슨 닭 울음? 이라며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저쪽에 가다 보면 넓은 터가 있고 지나면서 보면 거기 닭을 놓아기르고 있다. 내 딴에는 재미있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운치 있다고 새벽마다 한 번씩 웃는다.
아주 집중을 하면 배산 쪽에서 울리는 종소리도 들린다. 새벽 5시, 글을 쓰다가 은근하게 밀고 들어오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말씀이 이렇게 세상에 퍼졌겠다 싶어서 어두운 창밖에 잠시 시선이 간다. 어쩐지 세상과 일체감이 드는 날은 그대로 앉아 눈을 감는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평화를 빕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번진다.
방향과 출처를 아는 것은 감각을 한 단계 상승시켜 사람을 돕는다. 헛것을 짚어 물에 빠지지 않게 한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수고를 덜어준다. 여기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면서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던 연암 선생의 가르침은 일부러라도 상기해 볼 만하다.
- 오늘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을 볼 수 없으니 그 위험은 외곬으로 듣는 데만 쏠려 귀가 바야흐로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도다. 마음의 눈을 감은 자,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힘이 더욱 까탈스러워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라고. - 열하일기, 一夜九渡河記 중
어제 이 시간에 일어나 묵상을 적고 일기를 마저 적지 못한 채 출발을 했다. 가능한 불평하는 일 없이 살아보자는 마음이 어느 단계에서 들었던 거 같다. 일기를 적는 사소한 일이 사람을 평화로 이끄는 것을 체험하는 요즘이다. 일기를 쓰지 못해서 아쉽다니, 과연 그 사람이 나란 말인가. 어딘가에서 듣기에 마음이 바뀌면 몸도 따라 바뀐다고 했다. 그 마음을 선택한다고 그랬다. 나는 어떤 마음을 골랐을까, 자꾸 흥미로워진다.
코로나로 여름 끝을 앓아누웠던 것이 옛날 같다. 벌써인지, 겨우인지 경계가 어슴푸레 떠오른다. 분명하지 않은 것이 좋다, 황홀이라 하지 않나. 황홀 恍惚, 희미한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이 앞서갔다. 몸이야 세월 같은 거니까, 그저 따라가면 된다. 지천으로 흐르는 것이 또한 세월인데 주저할 것도 마다할 것도 없다. 구시렁거리면 입에다 떡 하나 넣어주면 금방 조용해질 것이다. 나는 나를 다룰 줄 아는 것이 또 다행이다. 십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서는 내가 고맙다. 말이 난 김에 떡이 먹고 싶다. 이름이 낯선 그 떡은 어디에서 맛볼 수 있나. 삼키기 아까운 떡이라니, 석탄병惜呑餠 - 잣과 꿀이 들어가 달콤하고 고소하며, 계피와 생강의 매운맛이 은은한 감 맛과 어우러져 다른 떡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맛과 질감을 가진 떡, 향과 맛이 너무나 좋아 삼키기가 아까울 정도라는 뜻을 가진 멋스러운 떡 - 한국 세시풍속사전
이미 마른 것들과 말라가고 있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을 걸었다. 낙엽이 눈처럼 쌓였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추억을 다 쌓아놓으면 이만큼은 될까 싶을 정도로 낙엽이 깊었다. 발을 덮었고 발에 밟혔고 발에 미끄러졌다.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어린것에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지 첫 질문을 던졌다. 강이야, 무슨 소리가 나냐. 너도 영혼이 우는소리 같았으면 했을까, 아빠는 너를 시인으로 만들고 싶어서 웅석봉에 와서도 바람의 꿈을 꾼다. 감자칩 먹는 소리가 바사삭 나더란다. 훗날에 네가 나를 떠올리거든 오늘 물었던 내 물음과 오늘 답했던 네 대답을 함께 바람에 날려다오. 그때에 너는 엄마와 걸었던 모습을 상상하며 추억하겠지. 내가 뒤에서 살살 그 모습을 사랑했었다고 고백한다. 길이 일어나 두 사람을 섞어서 떡을 짓는다. 그 떡이 석탄惜呑이었다. 삼키기 아까운 시절, 콩고물을 듬뿍 묻혀 너 한 입, 나 한 입.맛도 좋아라, 만추晩秋의 지리산은 산길도 정겹다.
정겨운 것도 잠시, 가파른 산줄기가 이어졌다. 산등성이를 톺아 올랐다. 다섯 걸음을 옮겼다가 한 번 쉬고, 더 가지 않았으면 했다가, 그래도 가야지 했다는 것을 우리들 뒤로 남은 웅석산의 돌들이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가족이 여길 지나던 11월이 기억난다며 할머니 얼굴처럼 주름이 많은 돌 하나도 옛날을 떠올릴 것이다.
"바람이, 겨울바람이 솟아나고 있었지. 오르막을 다 오르고 운니 마을을 향해서 내려가다 편백과 떨기나무로 조림 사업을 했다는 안내 표지판을 막 지나던 참이었어. 그날 볕이 유난히 따스했던 것이 기억나. 그 왜 있잖아, 볕에 버무린 바람이 부는 날, 네 사람이 흔들거리면서 걷더라고. 겨울이 멀지 않았다는 말을 주고받는 거 같았어. 발걸음 소리가 이 골짜기에서 울리는데 그게 그렇게 차분하고도 듣기 좋은 거야. 그런 것을 노래라고 하던가. 고르고 규칙적이면서 자유로웠어. 바람에 어울리는 노래였어. 그때 노랫말을 들었던 것도 같고 전혀 듣지 못했던 것도 같은 것은 뭘까.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여운처럼 남았던 것이 소리가 아니라 내 탄식이었던 거야. 내가 돌덩이인 것이 잠깐 허무했어, 천 년도 더 전에 한 번 느꼈을까 싶었던 기분이 들더라고. 놀랐지, 나한테 놀랐어. 나는 돌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따라서 걷고 싶더라고. 늦은 가을 오후를 지나는 사람들, 떡가루였어. 꼭 채로 거른 가루 같았어. 이제는 그런 날이 있었던가, 그마저도 잘 모르겠네, 그려."
지리산 둘레길 7코스 출발 지점은 경호강이 흐르는 성심원 앞이다. 하나만 먼저 말하고 길을 걷자. 혹시 함양 휴게소에 들르거든 호두과자를 사서 옆 사람에게 건네면 좋을 듯싶다. 눈이 커질 것이다. 그 커진 눈동자 속에 내가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보살처럼 앉아 있는 나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찰나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호두과자가 알사탕보다 달콤할 것이다.
성심원까지 걷고 돌아섰던 날이 지난 10월 10일. 한 달 열흘 만에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 몰랐는데 운이 좋다고밖에. 서늘한 기운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좋은 날에, 좋은 날에······ 흥이 났다. 몸이 말을 걸어오는 날이었다. 나란히 선 세 사람 키가 고만고만하다. 웃고 장난치는 틈을 찍었다. 세 사람 모두 마스크에 얼굴이 가리고 눈만 나왔다. 마스크를 끼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이 사진이 증명할 것이다. 강이는 긴 머리가 유난히 찰랑거렸다. 산이는 어떤 음악을 주로 들을까. 양쪽 귀에 저렇게 꽂고 다녀도 괜찮을까. 볕이 좋았다. 빨래를 널어 말리고 싶을 만큼 햇살이 맑았다.
7코스는 한마디로 천 미터쯤 되는 웅석봉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13.4km 그 여정의 시작, 이 물은 흘러서 진주 남강이 되는 거야, 성심원 앞 경호강 물빛이 아른거렸다. 나룻배가 여길 건너던 시절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성심원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던 곳이다. 그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우리도 걸어보는구나.
반달곰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곳곳에 보였다. 빌 브라이슨이 걷고 쓴 '나를 부르는 숲'에 비하면 오늘 이 길은 깜찍한 미니어처 같았다. 사람이 어떻게 3200km를 그것도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산속으로 걸었는지, 도무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내 걸음에 충실할 것,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 빌 브라이슨을 흉내 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어린것들 둘과 함께 걷는다. 다 크고 나면 무엇이 될지 궁금한 아이들이 동행하고 있어서 좋다. 걸음이 느리고 시간이 한참 걸려도 이렇게 넷이서 걸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길이 사랑스럽고 우리가 행운인 것 같아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걸음을 기꺼이 공부라고 부른다. 다 같이 하는 공부가 즐거운 법.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와 푹 자고 있다. 토요일은 벌써 지났고 일요일 새벽. 6시가 다 됐다.
웅석봉 바로 아래 800 고지까지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다 왔어', 그것이 내 대사였다면 '집에 가고 싶어'는 산이 대사였다. 엄마 대사는 뭐였더라, 강이는 '머리가 띵하다'는 말, '배가 아프다'는 말, 엄마는 그때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그렇게 오르고 올랐다. 늘 그렇지만 걸음은 위대하다. 차가 오르지 못하는 길을 사람이 오를 수 있고 결국 태산에도 오르는 것이 사람, 사람의 두 발이다.
이렇게 힘든 길을 만나면 나는 늘 써먹는 코스가 있다. 우리 3코스도 걸었잖아. 그 말은 꽤 효과가 있다. 인월에서 금계까지 걸었던 그 20킬로짜리를 들먹거린다. 등구재 넘어갈 때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때를 꺼내놓는다. 능청스럽게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꼬신다. 그런 말이 실제로 있다.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 - 흔히 닻 내림 효과라고도 한다. 맨 처음 마주친 경험이 이후 이어지는 행동의 판단 근거나 기준이 되는 효과를 말한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면서 닻을 내리면 배는 출렁거릴 뿐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 가 발생한다. 일종의 기만술이다.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술책이다. 맨 처음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 정말이지,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데 - 20킬로짜리 진짜 둘레길이었다. 그때가 언제냐, 초등학교 5학년에 중학교 1학년 짜리를 데리고 걸었으니 아동 학대라고 신고당했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울면서 걸었던 길이라고 강이는 대꾸한다. 거기, 울면서 걸었잖아. 나는 또 못 들은 척 앞장섰다.
뻣뻣했던 것들이 나근나근해졌다. 길도 사람도 말랑말랑해졌다. 그 틈으로 언제 오르냐 싶은 것들이 발아래 보이면 사람은 다른 존재가 된다. 높은 것이 돼볼까 싶어 진다. 그러니까 산에서 배워야 한다. 발을 땅에 딛고 나는 법이 거기 있다. 사람이 턱없이 높아지는 것은 위험하다. 이치에 맞지 않다. 날개도 없이 사람은 높아지려고 한다. 그것이 두렵다.
산에 오르면 날개가 돋는다. 공중을 날아가는 날개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는 날개가 펼쳐진다. 독수리처럼 멀리 조망한다. 산 너머에 있는 산들을 깨우친다. 눈이 날개다. 이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날아보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꼭대기가 곰을 닮았다는 웅석봉 턱밑까지 와서 점심을 먹었다. 몸뚱이 둘이 널브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산이는 늘 1분만 더 쉬자고 그러고 강이는 그런 오빠를 편으로 뒀다. 이제는 컸으니까 둘이 오라며 아내와 내가 먼저 출발한다. 우리는 빠르지 못하니까 성실하기로 마음먹고 걷는다. 언덕도 우리가 먼저 오르고 소나무 그늘 아래에도 우리가 먼저 도착한다. 순서가 보기 좋다. 보기 좋은 것들이 내내 이어진다. 산행이 아름다워질 무렵에 탑동마을로 내려온다. 그 내리막이 거의 전부다. 그러니 구름을 실컷 봐야 한다. 그렇게 주의를 빼앗겨 나를 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차가 다니는 길이 나오고 길이 끝나고 마니까. 내리막은 오손도손, 남은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산행 기술이다.
흙벽을 보면 공손해지고 싶어서 눈에 불을 하나 끈다. 매화가 피었다는 옛날, 탑동 마을이 보고 싶었다. 볕이 쪼그맣게 오그라드는 마당에 빨랫줄을 받치고 서있는 대나무 장대가, 너는 나를 본 적 있지 않느냐고 힐끔 물어왔다. 왜 알고 있다고 그러지 못했는지 마을을 벗어나는 데에서 무르춤했다. 돌아가서 그래 반가웠다고 그러면서 사진도 찍을까 했지만 볕이 옷자락을 잡고 말렸다. 괜찮아, 괜찮아, 일부러 그런 거야, 늘 혼자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반가웠던 거야.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을 본 것만 해도 그게 어디냐며, 늦가을 볕이 속닥거렸다. 아이들아, 다 왔다. 저기가 끝이다.
- 감이 흔한 가을철에 그대로 감을 두면 물러져서 쓸 수 없게 되니, 미리 떫고 단단한 감을 얇게 벗겨 말려두었다가 쓴다. 감은 시간이 지나면 물러져 진이 생기므로 가루로 만들기가 어려워지므로 단단할 때 말려야 한다. 감이 처음에는 카로티노이드(carotinoid) 색소를 지닌 진노란 빛을 띠지만, 말리면 검은 자줏빛 팥색이 난다. 처음에는 떫지만 말리는 동안에 떫은맛은 가시고 단맛이 단다. - 한국 세시풍속 사전
이번에는 뒤에서 따라오다가 쉰이 넘은 엄마하고 열 살 갓 넘은 딸이 걷는 모습이 예뻐서 동영상으로 찍었다. 분명 내가 그리워할 모습이었다. 아무리 시선 속에 담아 놓아도, 희미해지는 것이 좋다 그러더라도 한 번은 더 보고 싶어질 것이다. 갈증이 나면 어쩌나, 둘이 친구처럼 보기 좋았다고 백 번을 말해도 믿지 않으면 어쩌나. 길이 힘들었다고 웃으면서 공격하는 남매를 나는 공중에 걸어놓는다. 길을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 사람은 늙어가고 한 사람은 자라고 있다. 내가 그들의 길이었기를 잠시 바랐다. 그 바람은 떡가루였다. 떡이 다 됐다. 우리 오늘 수고했다고 떡 하나 먹자, 호랑이도 하나 주고 11월, 따뜻했던 계절에게도 삼키기 아까운 떡을 한 접시 내어주자. 엄마가 가루가 되면 검어질까, 검버섯이 피었던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할머니 주름살은 보기만 해도 부들거렸다. 깊은 것들은 보드라웠다. 강이는 대추 맛을 낼까, 계피 맛이 날까. 산이에게는 잣가루와 꿀을 마련해 두라고 일러둘까. 나는 멥쌀가루가 되어보련다. 늦가을 볕에 감열感悅 하는 맛. 길에서 찌는 떡, 하늘 아래에서 받아먹는 떡, 우리는 서로에게 두터운 한 고물의 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