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적고 있다. 지금까지 날씨를 따로 기록하지 않고 무시했었는데 날씨도 같이 적어두고 싶어졌다. 그래서 올해 쓰는 일기에는 날짜와 요일 끝에 날씨도 덧붙이고 있다. 날씨가 때때로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을 새삼 이제야 인정하다니, 나도 참 무심하다.
몇 시에 잠들었을까. 좀 어수선했다. 그렇지, 이럴 때는 심란했다고 하는 거지. 지금 병원 가는 길이에요, 그러면서 통화가 시작됐다. 마치 말라죽지 않게 물을 주는 화분처럼 내 휴대폰을 울리는 사람, 아내였다. 가끔 그 생각이다. 갈림길에서 나는 이쪽으로 들어섰구나 싶은...
마흔여섯이라는 숫자는 모양이 다양하다. 생각해 보면 마흔여섯뿐만 아니라 나이가 되는 모든 숫자는 그렇지 않을까. 상대적이라는 말, 그 말이 어떤 눈매를 가졌는지 암 병원에 다니면서 잘 알 수 있었다. 정말 잘 찾아냈다. 나보다 아프거나 괴로워하거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감지기처럼 만져졌다. 그때마다 어색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다. 경고음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 가까이 다가가 앉으라는 신호 같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착한 사람들이었다.
아픈 줄 몰랐을 때, 그러니까 흔히 말하듯 바쁘게 살 때는 나보다 잘하거나 잘났거나 잘 사는 사람들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그때도 아픈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눈은 알다시피 표피 아래에 흐르는 사연들을 읽을 수 없다. 성형의 완성은 눈속임에 있는 것처럼 눈은 속이고 속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이 맨 처음 열고 들어오는 문이다. 본다는 말은 '안다'는 말을 품었을 때 비로소 볼 수 있고, 안다는 말은 '본다'라는 말이 다 전하지 못하는 행간行間을 채우는 한 줄, 한마디의 말이다. 그래서 보고 싶다는 말을 나는 끝에다 쓴다. 수백 번을 떠올리고 그 앞에 바람이 몇 번 더 지나가고 돌 하나 올려놓듯이 쓴다. 보고 싶다는 말 하나에 내가 알고 있는 그대가 얼마나 많은지, 그대는 모른다.
암癌을 경험하면서 내 시신경을 통과하는 대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처리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그것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병실에 들고 찾아가는 꽃은 늘 십자가를 떠올리게 한다. 내게로 오라, 너에게 간다. 사람들의 아픈 기운을 받아들이며 제 향기를 품는 연하고 예쁜 것들.
조카 장연이가 건네는 묵주, 빈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에서 샀다며 웃는다. 성당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관광차 들른 성당에서 나를 위해 일부러 묵주를 사는, 묵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장면을 나는 본다. 그리고 안다. 장연이의 문장과 내 문장 사이를 지나는 말들이 부조되는 것이다. 그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나이가 있다.
마흔여섯은 어떤 나이였을까. 가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설 때 일어나는 설렘 같은 것은 없었다. 열 살, 일곱 살짜리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빠르고 너무 늦은 것들이 나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갈라섰다. 거기에서 내가 했던 첫 번째 동작은 '너무'라는 그 말을 지우는 일이었다. 그 말은 잠시 잊기로 했다. 빠르고 늦은 것들을 지금부터 챙겨도 다 못 챙길 텐데, 너무 그러지 말자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너무'는 지우고 차라리 '나무'라도 한 그루 심어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나무처럼 가꾸면서 물을 주고 볕이 들게 가지를 솎아줬던 시간은 아니었을까. 빠르고 늦은 것들 가운데에서 적당하게 자라준 내 나무들.
가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공감할 때가 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 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 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 적은 없다. 늙지 않기를 바란 적도 없다. 나는 늘 바람이 부는 곳에 서 있다는 것을 안다. 그때는 너무 일찍 분 바람만 탓했었는데 너무 늦게 부는 바람을 원망했었는데 마흔여섯에 수술실 복도를 따라가면서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불고 있구나,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처음으로 포근했다.
병원에 검사하러 간다는 통화를 끝내고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다. 다른 날 같으면 강이에게도 전화해서 밥은 먹었냐며 학원 갈 때 뭐 입고 가라고 일러줬을 텐데 어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빈궁 마마'라며 웃어댄다며 병실 분위기를 전하던 때가 벌써 몇 해나 지났다. 그때도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느라, 삶이 '너무' 번잡스럽다는 넋두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무슨 일 있으면 하느님도 안 믿을 거라고 철부지같이 아내가 떼를 썼다. 나는 그 마음을 비로소 안다. 둘이 다 아프면 어떡하나 싶었겠지. 그 마음이었겠지. 수술을 하면 몸에 흔적이 남는다. 어떤 흔적은 몸을 아프게 한다.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삶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오래 계속 남아서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싫증이 얼굴 가득히 퍼져 있는 아이, 피곤하니까 말 걸지 말라고 커다란 어깨로 말하는 아이, 말투에 짜증이 섞인 아이들이 유난히 시끄러운 날이 있다. 수업 시간을 조정해 달라는 엄마가 있고, 아파서 아이가 결석한다는 엄마가 있고, 여행 때문에 빠진 수업은 보강이 되는지 묻는 메시지가 차곡차곡 들어온다. 나는 지금 그때 다시 새로 들어선 길에서 얼마쯤 지나왔을까. 길이 서로 많이 다르지 않더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더 궁금하지 않은 것도 다른 나이를 살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도 나이가 있으니까 종종 병원에 다니는 것이겠지, 또 부지런히 사니까 몸이 아프기도 하겠지. 빠질 수 없는 회의가 있어서 늦게까지 참석하다 왔다는 사람을 보고 나도 자리에 누웠다.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병원에서 괜찮다고 그러더라는 말만 듣고 서둘러 방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든 다행이다 싶으면 잠이 온다. 다행이다 싶어야 잠도 온다.
일찍 일어나 어제 이야기를 적었다. 누가 묻는다. 매일 어떻게 쓰냐고. 그 대답을 못했었는데 이렇게 말해볼까 싶다. 깨닫고 싶어서. 나는 깨달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깨닫는 사람이다. 중국 소설가 위화가 그랬다지, 목적이 있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더라고.
마침 눈을 비비고 일어난 아내가 인사를 한다.
'잘 잤어요?'
내가 할 말을 먼저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