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내 잔소리 가운데 하나는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기 쓰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도 잘 알고 있다. 다 잊더라도 나는 잊지 않고 일기는 쓰고 있냐고 묻는다. 그것이 성가시고 귀찮은 줄도 안다. 그래서 가끔 꺼내서 닦는다. 잊히면 아예 잊고 마니까, 그러면 더 멀어지니까. 강이야, 요즘 일기 쓰냐? 그렇게 말을 건넨다.
더 일기가 필요한 사람이 사실은 산이다. 감상하는 힘은 그런대로 좋은 편인데 그것을 풀어내는 솜씨는 서툴고 어려서 좀처럼 서술하지 못한다. 말은 글과 또 다른 영역의 활동이라서 뜻을 전달하는 데 그런대로 불편함이 없지만 자기 생각과 체험을 한 편의 글로 작성해서 상대에게 전하는 일은 저절로 되는 활동이 아니다. 연습 없이는 거닐지 못하는 영역이다. 불편함이라도 느끼면 좋아지려고 노력할 텐데, 아쉽게도 글은 사람을 불편하게 몰아세우지 않는다. 항상 저만치 떨어져 그러려니 남 대하듯 한다. 사람을 부추기지 않고 그렇다고 돕지도 않으면서 따로 존재한다. 흐르는 물을 항아리에 담아 어디에 쓸 것인지는 그 사람 나름인 것처럼 글도 무심히 흘러만 간다. 구름처럼, 세월처럼.
강이는 일기도 쓰다가 멈추고 시를 외우다가 멈추고 자주 멈추고 그만큼 자주 다시 시작한다. 어리니까, 아직 열몇 살짜리니까, 그게 보기 좋다. 아이가 멈출 때 다그치지 않으려고 마음먹는다. 멈출 때 같이 멈춰주지는 못해도 그것을 망치지 않겠다고 조심한다. 대신 건널목 차단기가 올라가는 것처럼 또 지나다니라고 무엇인가를 나는 들어 올린다. 강이야, 내가 해보니까 이만한 것도 없더라. 지금은 편지가 없는 시대, 나는 하나의 인간 박물관이 되어 내가 받은 편지들, 내가 쓴 편지들을 바닥에 널어놓고 아이들과 망중한을 즐긴다. 이것은 군대 적에, 이것은 호주에서 보낸, 이것은 뽀비네 집 기억나? 거기 아저씨가 쓴....
강이는 지난가을에 외웠던 시를 하나씩 닦고 있다. 오늘은 저기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맑게 닦았다. 비가 내리던 하늘도 점차 개고 있다. 1교시 수업을 받고 있을 것이다.
"엄마,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
1학년 같은 반에 몸이 불편했던 친구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제도 하굣길에 그 친구를 봤다고 그런다. 혼자서 가더란다. 그런데 이제 같은 반이 아니라서 자기가 도와줄 수 없다고 그러면서 꺼낸 말이다. 왜 도와줄 수 없을까.
나는 그 말이 던져지는 현장에 서 있는 것처럼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내에게서 강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왔는지 이야기를 듣던 지난해 늦가을 아침은 우중충했다. 마음도 하늘도.
"야, 강이야. 장애인 니 친구 저기 간다. 니가 가서 도와줘야지!"
그럭저럭 잘 지내던 여자아이들 틈에서 사이가 벌어졌고 그 틈을 더욱 세차게 벌려 헤집어 놓는 아이가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어디든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강이가 그런 말들에 주눅이 들어가는 것 같다고 그랬다. 같은 상표의 신발을 신었다고 뒤에서 따돌리는 것을 경험하더니 3월 신학기에 실내화를 사는 데도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 참 가르치기도 어렵고 내가 실천하기도 어려운 그 마음 -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지난가을 강이는 신경림의 갈대를 읽고 감동했었다. 그 모습이 나한테는 감동이어서 그날을 일기에 적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갈대를 읽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너도 흔들리겠구나. 그것이 바람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울음 하나를 간직하고 산다는 말을 너는 사탕처럼 녹여 먹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가난하다.
깜빡이를 넣고 아이를 내려줬다. 다녀오겠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사람이 보듬고 간다. 다녀오겠다는 말이 사람을 지킨다. 그래 다시 돌아오는 힘, 그게 회복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