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와 강이, 둘이서 점심을 먹고 있다.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한의원에 가느라 집에 없다. 토요일 점심을 내가 차렸다. 존 바에즈를 듣고 있으면 내가 살아본 적 없는 60년대, 그것도 워싱턴 D.C에 있는 어느 스트리트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멀리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가면서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하는 내가 있다. 그녀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나는 모든 것들이 너무 익숙하다. 다 다음에는 'We Shall Overcome'이다.
그런 목소리들이 있다. 한 시절을 통째로 기타 선율에 태우고 시간을 훌쩍 건너오는 나나 무스쿠리 Nana Mouskouri는 얼마나 편안하던가. 박인희도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늘 어딘가를 그립게 한다. 어떤 곳이 되기도 하는 어떤 시절, 옛날을 싣고 다니는 목소리들은 사람을 애태운다. 평범한 토요일 점심에 존 바에즈는 과했다. 계란을 풀고 스팸을 이번에는 가지런히 썰었다. 계란 옷을 입은 햄이 보기 좋게 구워져 접시에 올랐다. 한쪽에서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나는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섰다.
3살 차이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구석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 무엇이든 결국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해진다. 세 살이든 서른 살이든 사람에게 달렸다. 건너편 놀이터는 날마다 모습이 바뀌고 있다. 놀이터는 그대로 있으면서 매일 변한다. 놀이터는 상황일까, 당사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발상이다. 누구를 어디까지 내 상대로 인정할 것인가는 나름 의미 있는 질문이다. 시인들은 속삭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화를 시도하지 않던가. 소설가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 굽는 냄새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지 않던가.
처음에는 국어로 시작했다. 강이가 소설에서 다루는 시점에 대해서 묻는 거 같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산이가 작가 관찰자 시점은 뭐냐고 묻는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일격을 가하는 모습이다. 저기서 따지고 들어야 상대가 멈칫거리는데 그리고 서로가 발전하는데 아직 싸울 줄 모르는 저 두 군대는 일단 공격을 하고 본다. 강이가 다른 무기를 날렸다. 그다음도 생각하면서 무기를 골라야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는데 이번 공격은 그런 면에서 아쉬워 보인다.
당나라가 어떻게 망했는지 알아? 역시 산이는 3살 차이를 이용할 줄 안다. 1년이면 356일, 365일 곱하기 3. 1,095 끼다. 가볍게 질문을 피하고 같은 곳을 찌른다.
그러면 당나라 때 우리나라는 어느 시대였는 줄 알아? 거기까지는 서로 주고받고 그랬다가, 갑자기 아시리아를 들고 나오는 강이,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노린다.
아시리아? 전혀 모르겠는데?
싸움터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말은 금물이다. 강이는 산이가 모르는 데를 집중적으로 묻는다. 중학교 2학년이 고등학교 2학년한테 덤빈다. 문제가 막 나간다. 사산조 페르시아 왕조가 나오고 그리스 아테네, 델로스 동맹까지 나오니까 산이는 거의 포기하는 듯했다. 로마가 나오고 비잔티움, 비단길 같은 반가운 말들이 들렸다.
6자야, 정답은!
결국 그리스와 스파르타가 싸운 전쟁까지 왔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산이는 슬슬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걸 몰라? 하마터면 뒤를 돌아볼 뻔했다. 아무 관심 없는 척 고개를 길게 내밀고 창밖을 주시했다.
찌질하게 들렸다. 산이가 원소기호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도 은근히 관심이 갔다. S - 황, P - 인, 오랜만이다. 규소가 뭐냐고 묻는다. 강이 ····.
아침 등교 시간 30분, 둘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7시 반에 일어나 30분 동안 집안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등교 준비를 하는 남매다. 현실 남매. 가끔씩 서로의 옷을 입기도 하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둘이다. 오빠가 학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는데 인사를 하는 거야,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나도 안녕, 그랬는데 옆에 오빠 친구가 누구냐고 그러는 것이 다 보이더라고.
조금 더 자라면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고 연애도 할 것이다. 그때에도 둘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내가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결정적인 것은 하나면 된다.
산이와 강이는 이렇게 묻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모르지?'
'그것도 모르냐?'
* 산이에게 가만히 건넸다.
시험 끝나고 이 책 봐라, 만화책이야.
'헤로도토스 역사'
거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야기도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