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으면 늦었지 결코 이른 시간이 아니다. 샤워하고 머리까지 말리는 아이가 제시간에 등교하려면 30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 7시 24분, 겨우 잠에서 깬 산이가 그렇지 않아도 아침을 챙기느라 바쁜 엄마를 부른다.
"엄마, 발 좀 주물러 줘."
나도 저 시절에 그랬던가. 문득 창밖을 보며 오늘은 하늘이 맑겠다는 생각을 했다.
슈바이처 박사가 그랬다지, 삶의 절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그래서 늦은 나이에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요즘 병원에 의사가 없어서 입원하기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슈바이처 박사보다 훨씬 많이 늦었는데 무엇으로 그와 같이 나머지 인생을 살아볼까.
다른 때 같았으면 다 큰 애를 또 깨우러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했을 텐데 오늘 아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산이가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자다 일어났는데 무작정 따지고 드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또 시험이다. 제 딴에는 분발하느라 애를 쓰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산이 방에 갔다. 엄마가 주물러주는 대로 몸을 내맡긴 채 아직 눈도 뜨지 않는 산이 옆에 나도 쪼그렸다. 종아리며 허벅지가 탄탄하다.
"어렸을 적에는 아빠한테 등허리 긁어달라고 하고 엄마한테는 발바닥 주물러 달라고 내밀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토막을 아내가 꺼냈다. 나는 손이 야무지지 못해 아무리 잘 주물러도 다른 사람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긁어주는 것이나 두드려 주는 것이 백 번 쉽다. 4살짜리도 그것은 알고 있었던가 보다.
몇 걸음이었을까.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아이가 누워있는 데까지 열 걸음도 되지 않은 그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겠지만 거기에도 작은 울림은 있었던가····.
다녀오겠습니다. 두 번이나 그러고 나섰다. 두 번째는 허밍을 넣어 '사~랑~해~요~' 그러고 나갔다. 아침 먹은 그릇들을 씻다가 웃음이 났다. 월요일에 용돈을 2만 원 더 챙겨 준 것 때문인지, 오늘 아침 스페셜 서비스 때문인지, 수돗물이 시원하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