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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pr 30. 2024

불편함을 감당하는 - 6부

에세이 한 스푼에 소설 두 스푼


죽은 줄 알았다고 그랬다. 그 한마디뿐이었다.

죽은 줄 알고서,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 그것을 만지는 일, 사체라고 부르는 그것을 물에서 건져내는 일은 소름 끼친다. 고양이가 죽어도 기르던 애완견이 죽어도 그 가죽에 손을 대는 일은 너무나 힘들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했어도, 사랑한 만큼 끔찍하고 떨려서 마치 그것이 사랑한 죄 같아서 심장이 단단하게 굳어가는 것만 같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라면, 몰랐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안타까움만 있다면 그것은 일이 되거나 도리가 되어 어떻게든 처리가 되지만 '처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줄 모르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아이에게 내가 미안한 것이 있다면 그 울음을 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득히 멀어지면서 파도 소리에 묻히면서 아빠, 아빠, 아빠.

7살짜리가 아주 크게 울었다. 바다를 울릴 것처럼 울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오늘 아침에는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학교에 갔다.

7시 24분, 겨우 잠에서 깬 산이가 그렇지 않아도 아침을 챙기느라 바쁜 엄마를 부른다.

"엄마, 발 좀 주물러 줘."

​다른 때 같았으면 다 큰 애를 또 깨우러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했을 텐데 오늘 아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또 시험이다. 제 딴에는 분발하느라 애를 쓰는 것 같다. 어제도 몇 시에 집에 왔는지 모른다. 몇 시에 아이가 잠들었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산이 방에 갔다. 엄마가 주물러주는 대로 몸을 내맡긴 채 아직 눈도 뜨지 않는 산이 옆에 나도 쪼그렸다. 종아리며 허벅지가 탄탄하다.

​"어렸을 적에는 아빠한테는 등허리 긁어달라고 하고 나한테는 발바닥 주물러 달라고 내밀었었는데."

아이를 주물러 주는 아내 옆에 쪼그려 앉아 나도 꾹꾹 눌렀다.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잠은 벌써 다 깨고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거 같다.

​몇 걸음이었을까.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아이가 누워있는 데까지 열 걸음도 되지 않은 그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다녀오겠습니다. 두 번이나 그러고 나섰다. 허밍을 넣어 '사랑해요' 그러면서 끝을 한껏 올리며 나갔다. 산이가 올려놓고 나간 것들이 집안에도 둥둥 떠다녔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전화가 울렸다. 아파트에 그새 도착한 아내가 피곤한 음성으로 소식을 전한다. 12시 전에는 마쳐야 할 텐데, 국이랑 데워서 강이하고 밥 먹어요.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요.

미역국을 데우고 어묵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대파를 잘게 썰었다. 쓰다가 남은 양파도 썰어서 한 데 모았다. 당근이 있으면 좋은데 안 보인다. 물을 끓여서 어묵을 한 번 더 씻어놓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어묵을 볶았다. 계란은 너무 자주 써먹어서 오늘처럼 괜히 기운 빠지는 날은 보류다. 참기름하고 간장을 둘러 강이 입맛에 맞춘다. 굴 소스를 넣을까 말까 하다가 도로 넣어두었다. 스파게티 면을 삶을 걸 그랬나. 잠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 번지면서 이것도 괜찮다 싶었다. 간장이 어묵에 스며드는 냄새도 다른 날보다 차분하고 가벼웠다. 냉장고 한쪽에 다듬어 놓은 달래가 있었다. 칼등으로 달래를 두드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두드리고 송송 잘라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아내는 매실엑기스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들기름을 넣고 매실액에 다진 마늘을 넣고 마지막으로 깨소금을 뿌렸다. 맛은 어차피 간장맛이다. 달래장도 만들었는데 여기에 뭘 해 먹어야 할지 그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른 김! 마른 김을 구워서 같이 싸 먹으면 될 텐데 조미김만 남았다. 일단 아빠가 요리하는 식탁은 엄마가 차리는 것보다 반찬 수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러난다. 김치도 두 가지를 꺼내고 국에 밥, 어묵볶음, 아침에 먹었던 오이무침도 내놨다. 차라리 오므라이스를 할 걸 그랬나? 아이 표정을 살폈다.

요즘 물가가 엄청 비싸대, 허전한 저녁 식사가 내 탓은 아니라는 듯 그리고 그럼에도 많이 먹으라는 뜻으로 쓸데없는 말을 했다. 나는 어쩐지 밥맛이 없어서 대신 스피커를 켜고 음악들 들었다. 마침 비틀즈였다. 그것도 let it be, 강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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