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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29. 2024

께냐

살아서 불어주는


께냐 / 김인자


마추픽추를 돌아 쿠스코 난장에서 께냐 하나를 샀다

안데스 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한 선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살아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많을수록

죽은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는 걸 아는 듯

사랑하는 사람의 정강이 뼈로 만들었다는

잉카의 전설을 익히 아는 그가 밤마다 께냐를 불었다.


곁에 있으면 그리움이 될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

저릿저릿 흘러가는 강물도 말라

웃어도 저리 애끓는 가락이 되었구나


바람 속 먼지처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구멍마다 흘러나와 어깨를 토닥여주는 노랫말

괜찮아 다 괜찮아 영혼을 위무하는 피리소리


한 생을 달려간다 해도 다시 못 볼 그 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 탄생하는 악기


오늘, 살아서 불어주는 그대의 께냐



- 슬픔이 어느 때 그대를 울릴지 나는 안다.

매미 소리 가득한 지금은 단지 슬플 뿐이고, 슬픔은 자리를 잡지도 않았다.


슬픔은 당신이 알고 내가 아는 속에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여름도 지나고 어느 계절인지 모르고 지낼 때, 무심한 날에 반쯤 열린 문으로 가만히 들어서는 것이 슬픔이다.

손잡이도 없는 문이, 삐그덕 소리도 없이, 슬픔은 그렇게 온다.


살림이 가지런하면 가지런할수록 슬픔은 편안하게 자리 잡고 그대를 기다릴 것이다. 나란히 서 있는 것들에 위로를 건넬 것이다. 책이며 접시,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며 냉장고 안에 있는 캔맥주 같은 것들에게, 안녕.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서도 슬픔은 희미하게 웃을 것이다. 오늘은 구두가 쓰러졌네····

잘 지냈냐며 슬픔은 제 겉옷을 의자 위에 걸쳐 놓고 그대를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머물 것이다.

같이 한 곳에서 방해하지 않고 걸리적거리는 일도 없이 지낼 것이다.


아무 날 아무 때도 아닌, 그저 하늘은 높고 바람이 차분해서 거리에라도 나가봐야 하는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슬픔은 그런 날에 제 옷가지를 챙겨 입고 일어선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집안을 둘러보고 이것저것을 스치면서 웃어도 보일 것이다.

다 타지 않은 휘발유 냄새를 뒤에 남기고 떠나던 시골 버스처럼 슬픔은 냄새로 남는다.


그대에게서 울음이 새어 난다. 슬픔이 떠나고 난 자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물컵 손잡이가, 세면대 수도꼭지가, 깜박이는 현관 조명이 다른 날과 다르게 고집이라도 피우면 당신은 금방 꿇어버린다. 엎어진다. 눈물이 마른 가슴을 적시려고 솟는다. 살아있는 그대를 살린다.


텅 빈 방 안에서 텅 빈 그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 마르고 비워져야 울음도 깃들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안다.


혼자서 울어야 한다.

그대의 울음소리로 방 하나를 다 채워야 한다.

황소처럼 뻐꾸기처럼 매미처럼 아이처럼 울어라.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해진 그대는 사는 일에 자신이 없어서 운다.

그렇게 서른 밤을 다 울고 나서야 떠난 것과 남은 것이 그대와 슬픔처럼, 그대의 슬픔으로 피어난다.

그것으로 다음날을 사는 것이다.


피어나는 것들이 슬픔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그대도 모르게 살아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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