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줄도 모르고', 모든 이야기는 이 일곱 글자 안에서 머문다. 그 안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춤을 추다가 싸움도 한다. 무시무시한 전쟁마저도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나 총구로부터 발사된 총알이 서러운 까닭은 그것이 날아가 박히는 곳이 푸른 하늘도 윤동주의 무덤에 자란 파란 잔디*는 더욱 아닌 탓이다. 우리가 남기고 싶은 궤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밤에 설천강가에서 봤던 반딧불이의 무곡舞曲, 지리산 북쪽 달궁계곡을 달그닥거리며 깨끗이 씻어주는 차갑고 급했던 물살, 내가 총알이고 화살이라면 그렇게 오발誤發 되었으면 싶다. 잘못이 잘못인 줄 아는 것이야말로 각오覺悟*가 아닌가.
어떤 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비극을 짓고 어떤 이는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요지경 같다고 노래하고 누군가는 나훈아를 떠올리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프루스트라고 별 수 있을까, 사르트르나 사강이 다시 한 번 삶을 산다면 과연 그들이 선택할 삶이란 '그런 줄 알고' 가는 길이겠는가.
박규리 시인을 말하려면 경환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경환이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아팠다는 이야기도 해야 하고····. 2018년 5월, 산빛이 아무도 모르게 짙어갈 무렵이었다. 금요일 오전 나는 집에 가는 길에 경환이는 입원하는 길에 마주쳤다. 입퇴원을 번갈아 하면서 암환자들은 요양 치료를 받는다. 왜 그랬을까, 초면에 나는 네가 좋았고 너는 내게 '미소사'에 잠깐 들렀다 가지 않겠냐고 그랬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이 아닌 말이었다. 그날 내가 처음 본 사람이 바로 경환이와 박규리 시인이다. 그렇게 많이 아픈 줄 몰랐던 젊은이, 그리고 시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시인. 꼭 이럴 때 꺼내는 말이 '인연'이다. 아프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름들이 그날 나에게 생겼다. 그 무렵에 썼던 일기다.
2018년 6월 10일
"너, 요철이 뭔지 알아?
잘 휘어지는 철? 아닌가요?
너, 생긴 것만 잘생겼지, 많이 무식하다!
뭔데요? 다른 사람들도 모를 건데요?
고속도로 달리다 보면 '요철 주의'라고 나오니까 잘 찾아봐.
에이, 선생님이나 하니까 알지 다들 몰라요?"
하루 종일 커튼을 쳐놓고 지내는 네 쪽으로 방장산이 보이는 창窓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너 그거 아냐? 네 덕분에 나는 하늘도 반절만, 여름을 나는 방장산의 푸르름도 절반만 구경하고 지냈다는 거. 나는 저 커튼이 네 마음인 거 같아서 차마 만져보지도 못하겠더라.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젊어도 너무 젊잖아.
에세이를 쓰는데 네 이름을 그대로 써도 괜찮겠냐는 내 말에 수줍게 웃으면서 오히려 그래도 되냐고 묻던 얼굴이 떠오른다.
경환아.
어머니께서 보낸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많이 울컥했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서른아홉 먹고 장가도 못 간 아들이 몇 번이나 수술을 하고 후유증을 앓고,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미안하고 아프고 두려웠을까.
'상세불명의 말초신경 및 자율신경계통의 악성 신생물'
너도 나도 익숙한 말 '상세불명의 악성 신생물' 그런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말. 그 병명이 이 병실에서 제일 길다며 함께 웃었던 것이 지금 이 순간은 많이 미안하구나. 내가 너였다면 나는 억울해서 견디지 못했을 거다. 철문 같은 커튼을 내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원망만 쌓아두고 지냈을 것이다. 하늘이고 뭐고, 꽃이 예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사람 같이도 안 봤을 것이다.
집에 가는 나에게 '노래방' 갈 거냐고 물어왔을 때 많이 반가웠다. 말이 없는 네가 그렇게 표현해 주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준비 없는 이별'은 내게도 특별한데 너는 특유의 미소까지 지어 보이면서 그 노래를 아프게 잘 부르더라. 한 곡 한 곡 노래를 부르면서 너를 달래는 너를 볼 수 있었다. 잊지 못할 한낮의 노래방이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나에게 네가 했던 말은 아직도 나를 멍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암이 폐로 전이돼서 노래 부르는 것이 좋다기에 여기 오거든요. 오늘은 선생님이랑 같이 와서 좋았어요."
그런 사람, 경환이었다. 이제 6년이 흘러서 이렇게 그 좋은 이름을 또 부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반가운데 너는 어떨지 모르겠다. 먼 곳에서 여전히 웃고 있을 너를 내 마음대로 이 아침에 여기 등장시켰다.
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 내가 잘하는 것은 차곡차곡 같은 거, 그렇게 하면 되는 것들밖에 없다. - 어느새 게시글 천 개가 넘었다. 그러면서 - 이것도 내 고질병 같은 것인데 - 어쩐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게시글 몇십 개, 많으면 이삼 백 개쯤 쓰는 사람들이 구독자 천, 이 천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한 번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쓴 것들을 살펴봤다. 장사가 잘 되는 집에는 장사가 잘 될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둘러보고 난 느낌은 '합리적'이었다. 필요한 곳에 공급, 나는 거기에서 좀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철 지난 바닷가에 얼음을 깎아서 만들어주는 빙수 기계를 끌고 해변가에 덩그렇게 서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여전히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1001개에서 멈춰있다. 숫자를 더 늘리고 싶지 않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해서 예전에 썼던 것을 하나씩 삭제하면 된다. 과연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묻는 순간이 잦아지고 있다. 문제는 확신이 들 만큼 어떤 계기나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글은 잘 알겠는데 정작 내가 쓴 것은 못 본다. 그래서 댓글이 어쩌다가 달리는 날에는 여러 번 곱씹어 본다. 나는 이 느낌을 전달하고 있구나, 이렇게 보이는구나.
박규리 시인은 내게 특별하다. 6년 전에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을 낼 기회가 있었다.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한테 '책'이란 말처럼 천사 같은 말이 있을까. 파주 출판 단지에 가서 계약서까지 쓰고 한동안 세상이 평화롭게 보였다. 내가 가진 징크스 Jinx - 학생들 대부분이 스펠링을 몰라서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의식적으로 써둔다. - 는 무슨 일이든 한 번에 되지 않는 꽤 심오하고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행운은 시간을 끌지 않는다. 책은 유야무야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다. 박규리 시인은 못내 아쉬워하고 거듭 미안해했다. 그게 그럴 일이 아닌 것을 물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몸이 아팠던 시기를 마치 '꿈꾸듯이' 지냈다고 고마워했다. 지금은 그때 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글이라는 것은 칼날 같아서 갈고닦는 만큼 빛이 난다. 그리고 그 빛이란 세계도 오묘하기 그지없다. 날카롭다가 은은했다가, 사람을 베었다가 사람을 치료하는···· 빛.
치자 꽃 설화 /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 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 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 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
4월 한 달은 어떠셨는지요. 꽃이 피는 봄이었지만 세상 곳곳에서 곡 哭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뉴스에서 아프리카 ´콩고´는 지금 전염병 3가지가 동시에 창궐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와 그보다 심한 홍역으로는 5천 명 넘는 어린아이들이 사망했습니다. 나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4월이 다 지나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사람들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요.
저 어렸을 때에는 시골 마을마다 물 긷는 샘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된 옛날 같습니다. 외갓집에 가면 그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뛰놀다가 샘에서 발이며 얼굴을 씻고 집에 돌아가던 동네 아이들. 둥구나무 아래 조그만 처마를 낸 샘에서 또래 아이들 서넛이 첨벙첨벙 발로 물장난을 쳐대며 또 한 번 시시덕 거립니다. 어른들은 샘터에서 장난치면 혼내셨습니다.
물은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데 가장 소중한 것이었으니까요. 맑았던 물이 순식간에 흙탕물이 되어 흐려지는 모습은 어린 심정에도 미안하고, 죄송하고, 송구했습니다. 죄는 아니더라도 잘못한 것을 알겠기에 물 뜨러 누구라도 올까 봐 조바심이 나곤 했습니다.
가만 기다리고 있으면 위에서부터 맑은 물이 내려와 점점 - 그때 나는 ´점점´이라는 표현을 배웠던 거 같습니다. - 흐려진 물을 진정시켜 나갑니다. 탁한 것들은 흘러가고 무거운 것들은 가라앉히면서 다시 맑아집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깨끗한 것들에 관한 이미지 두 개를 말해보라고 하면 그렇게 맑아진 샘물하고 빨랫줄에 걸린 하얀 기저귀를 떠올립니다.
5월이 되면 다시 ´맑아지기´를 기도합니다. 바이러스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즐겨 듣는 라디오 음악 방송이 하나 있습니다. 조금 우울한 생각에 빠졌었던 것 같습니다. 순간 반가움이 솟았습니다.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
방송 끄트머리에 박규리 시인의 ´치자 꽃 설화´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우울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때마다 ´좋은 인연´을 떠올리면 되겠구나. 여기에서 한 번도 정치나 정치인에 관해서 말하던 적은 없었는데 꼭 말하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연설에서 ´대통령 자격´을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저기 앉아 있는 ´문재인´을 나는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는 나는 대통령 ´깜´이 됩니다."
좋은 학벌과 화려한 경력, 철옹성 같은 세력을 배경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들에게 그가 내보인 것은 ´좋은 인연´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이 멋지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릅니다.
박규리 선생님도 저의 부족한 아침 기도를 받아주십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시를 써서, 저는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좋은 인연´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물은 맑아지고,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또 싱글벙글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의 안부를 묻고 많은 분들이 평온한 마음으로 5월을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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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되지 않을 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말 한마디가 사람을 구름처럼 가볍게 띄웠다. 나, 글을 써도 되겠구나. 여름에 다닌 곳들을 적어 보낸 내 작은 이야기에 선생님이 그러셨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간직하면서 들여다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