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바람의 묵비 / 정호승
나는 운주사를 지나며 대웅전 풍경 소리를 울렸을 뿐
가끔 당신의 마음속 닫힌 문을 두드리는 문소리를 크게 내었을 뿐
당신이 타고 가는 기차가 단양 철교 위를 지날 때
기차 지붕 위에 올라가 가끔 남한강 물결 소리를 내었을 뿐
한 번은 목포항을 떠나는 당신의 뱃고동 소리에 천천히 손수건을 흔들었을 뿐
묻지 말라 왜 사랑하느냐고 다시는 묻지 마라
바람인 나는 혀가 없다
해가 지고 있었다고
곧 세월이 다 흘러가 버릴 것 같았다고
타고 남은 재라도 가져가고 싶었다고
어딜 가도 바다가 놓여 있었다고
하늘만 바라보던 날이 열흘쯤 있었다고
내 숨소리가 싫어서 저만치 떨어져 살았다고
걸어서 걸어서 걸어서라도 닿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