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을 가졌는가.

虛室生白하는 배움, 가르침

by 강물처럼

´마음´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없으면서 있고 있으면서 또 없는 신기한 것입니다.

누구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

우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올해 사람들은 ´공정´을 유난히 많이 외쳤습니다.

공정이 무엇인가 했습니다.

출발선을 나란히 그어놓고 시작하는 것이 겨우 우리가 세우는 ´공정´ 같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공정은 있기나 합니까.

하느님 앞에 그것을 끌고 나오면 도무지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만든 공정에는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힘없이 늘어진 표정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다고 그럽니다.

누가 말 거는 것도 귀찮은 것입니다.

그 아이와 나눈 이야기 한 대목입니다.

"그런 것 보면 너는 머리가 참 좋은데."

"아닌데, 저 머리 안 좋은데요."

"왜, 그렇게 생각해?"

"암기가 잘 안돼요."

머리가 좋으면 암기도 잘하겠지만 암기 잘한다고 해서 머리가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암기가 잘 안된다고 머리 나쁘다고 단정 짓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를 맺으려 했지만 아이는 신통찮은 표정이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의 할 일이란, 어떤 것을 더 많이 알려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많이 알려줄 것도 없지만 가능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재미있게는 해주고 싶습니다.

재미라는 것이 꼭 웃기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저 나름대로 자신 있습니다.

´웃기는 놈´이 제가 꾸던 꿈의 타이틀이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웃기고 싶어졌습니다.

"너는 속상한 거야, 뭔가 턱 막힌 것 같이 답답한데 풀 방법이 없어서 미치겠지?"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야."

역시 ´긍정´해주면 효과가 번져가는 것이 금방 눈에 보입니다.

의지가 약한 아이들은 생각보다 쉽게 반응하는 의외의 면이 있습니다.

착한 것과 의지는 별개입니다.

"그런데 너는 하나 놓치는 것이 있어."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이 10을 들여 노력하는데 네가 얻는 것은 5밖에 없고 그 아이는 10을 얻고 다른 아이는 더 얻는 것 같지?"

"나는 네가 10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그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면서 지금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이 전부인 양 판단하고 그것으로 마치 승부가 결정 난 것처럼 조급하다.

그 사람이 전에 10으로 암기하며 살았을 때, 그때 우리는 5밖에 되지 않았던 것을 깡그리 잊고 있는 거야.

아니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

사람이 살아온 날들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예 없다고 취급하는 것,

그것처럼 위험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없는 것이지.

놓치고 있던 사실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에 사람의 표정은 살아납니다.

마치 몸이 다시 따스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말을 건넵니다.


루카 복음에 보면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루카 21, 4

아이에게 재미난 이야길 해준다면서 내가 떠올린 장면이 엉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 형편에 맞게 얻어가는 인생들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웃음도 납니다.

물론 사람 사는 일에 관심이 없는 아이를 앞에 두고 성경 이야기를 쏟아놓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 대목을 보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형평성'에 관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른 것을 누구나 같게 만들려는 시도는 아름답다 못해 처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없는 것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사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공정을 쫓아다니다가 어이없는 일을 당한 것처럼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속옷을 먼저 입고 바지를 입었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대로 입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이 손에 남았습니다.

사실은 그런 우리들 자신에게 실망했던 것은 바로 우리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서로의 형편을 챙길 여유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미래의 세대는 물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형평성이란 큰 거울을 들여다 놓으면서 그 세대는 궁금해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이러고도 사람들이 살았었지?

과연 공정한가 묻는 일은 먼 훗날에나 있을 좋은 일 같습니다.

신은 인간을 공정하게 만들지 않고 그 고정을 실현시켜 나가는 모습에서 구원을 약속한 것은 아닌가.

마치 숨은 그림을 찾아 마지막 퍼즐로 향하는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저 가난한 과부를 떠올린다면 자본주의는 큰 병에 걸려 자리에 눕거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처럼 맑게 웃을 것입니다.

과연 이 어려운 숙제를 우리는 지금 풀어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마음' 같은 것을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간절한 만큼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간절함이 향하는 곳에는 침묵하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마음은 그분의 침묵을 대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백 리 길 가는 사람이 십 리 길도 정성스럽게 걷습니다.

십 리 길 가는 사람이 백 리 길을 걱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공정하고자 하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부족한 것들을 채우는 일일 겁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 타인에게 부족한 것, 하느님에게 부족한 것.

그것을 챙기는 일이 선이며, 형평성입니다.

투정이나 질투는 모자란 것에서 생겨나는 얇고 아련한 마음입니다.

침묵이 무거워 자리에서 일어서고 마는 어린 마음입니다.

그 아이에게 말해줬습니다.

"잘 달리는 사람이 1등 하는 것이 아름답다면,

잘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꼴등 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 아니냐?"

이제는 얼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눈치입니다.

그 사이에 제 침묵을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다 말하지 않은 비밀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을 혼잣말처럼 얼버무리다가 삼킵니다.

아이가 찾아낼 보물을 하나 숨겨놓아야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달리게 되면 그것은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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