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나에게 남은 약속은 무엇인가?
약속(約束)이라고 써봅니다. 임실에서 강진으로 차로 달리다 보면 섬진강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흐르는 물을 구경하기 안성맞춤인 돌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모레부터는 다시 겨울 추위가 찾아온다고 그러는 중에 오늘은 맑고 따뜻합니다. 돌다리 난간에 아이처럼 걸터앉아서 두 발로 허공에 대고 맴을 그려봅니다. 돌 위에 직접 닿은 엉덩이는 시리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봐줄 만합니다. 그저 물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는 이곳에 잠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슬쩍 나를 건들고 지나갑니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말- 이제는 하나의 경구와도 같은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겠기에 허전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그 마음이 더 잘 보입니다. 김남조 시인의 약속을 강가에서 적어봅니다.
약속 / 김남조
어수룩하고 때로는 밑져 손해만 보는 성 싶은 이대로
우리는 한 평생 바보처럼 살아버리고 말자.
우리들 그 첫날에 만남에 바치는
고마움을 잊은 적 없이 살자.
철 따라 별들이 자리를 옮겨 앉아도
매양 우리는 한자리에 살자.
가을이면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불을 지피는
자리에 앉아 눈짓을 보내며 웃고 살자.
다른 사람의 행복 같은 것
자존심 같은 것
조금도 멍들 이지 말고,
우리 둘이만 못난이처럼 살자.
김남조 시인은 누구에게 이런 약속을 하고 살았을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못난이처럼 살아버리고 말자! 좋은 결의라고 생각합니다. 못난이가 되는 일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입니다.
‘속이는 웃음보다 속아주는 지혜로’ 살아가라는 말은 팬시점 구석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향기 잃은 예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명 지박(無名之樸) · 이름 없는 소박함을 구하라는 노자의 가르침에까지 이르지는 못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악다구니 쓰는 현실은 아무래도 현기증이 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도 못난이가 되겠다는 사람은 드물어졌습니다.
나 자신 스스로 반성해봅니다. 바보처럼 사랑하자. 나는 그러자. 詩라는 것은 이렇듯 단정히 사람을 훈계합니다.
'그래요, 평생을 손해와 이익으로 계산되는 관계만을 맺고 산다면 우리는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박한 행복을 위한 약속입니다.
다시 몇 번을 읽어보아도 저런 약속 하나 하지 못하고 산다면 결코 행복할 방법은 없겠구나 싶어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우리들에게 매 맛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육신이 아픈 매가 아니라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단호하게 일러주는 정신이 아픈 매입니다.
저렇게 바보가 되어도 좋겠습니까? 정말 그럴 수 있겠습니까?
상대를 찾아 나서는 물음은 부차적인 것이고 나중의 것입니다. 언제나 물음은 자신을 향해야 합니다. 약속도 먼저 나에게 묻는 물음이어야만 합니다. 다시 겨울을 앞에 두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봅니다. 흐르는 물결 위로 춤추는 빛을 바라보면서 나도 빛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아무래도 우리를 세상에 내놓으시면서 제대로 살고 오라고 온기를 불어넣으셨던 것 같습니다. 못난이여도 좋아 보이는 유쾌한 온기가 세상에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당신과 나누고 싶은 아름다운 시, 약속을 새깁니다.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