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밥상머리 22

Buena Vista Social Club

by 강물처럼

날이 제법 추워졌다.

수도권과 경기 일대에는 눈이 내렸다고 한다.

첫눈은 사람을 밖으로 나서게 하는 힘이 있어서 좋다.

남녀를 떠나고 노소를 따지지 않고 어딘가에 가서 밟고 맞았을 첫눈이 나도 반가웠다.

도시에서, 공원에서, 청평에서 모두들 저마다의 눈 세상을 찍어서 보내준다.

그만큼 답답했을 사람들의 마음이 사진 뒷장에 찍혀서 같이 날아온 것 같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오빠가 성당에 가고 없는 저녁 6시에 강 이하고 둘이서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낮에 만두를 먹어서 밥 생각이 없다고 우리 둘만 먹으면 된다고 그런다.

강이가 던졌다.

"아빠, 오뎅국이 맞아, 어묵국이 맞아?"

나는 오뎅국이 맛있다.

대답 대신 따습게 김이 오르는 오뎅을 하나 건져 먹었다.

날이 차가워지면 무를 넣고 간단하게 끓여 먹는 오뎅국이 제격이다.

파맛과 무의 시원한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무엇보다도 겨울 찬 공기의 맛도 한몫한다.

아직도 겨울 산행 중에 순창 강천산 근처 큰 절벽 아래에서 얻어먹었던 오뎅국 한 그릇의 맛을 잊지 못한다.

출출하기도 했겠지만 찬바람 속에서 얼어붙었던 양쪽 볼이 푸근하게 녹아내리던 그 고마운 맛이 겨울이 되면 생각이 난다.

지극히 맛있는 맛이었다.

"강이야, 어묵이라고 해야 돼."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까 괜찮아도 너는 앞으로 계속 커갈 테니까 혹시라도 실수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러줬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을 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강이는 엄마한테 밥을 비벼달라고 했다.

계란 프라이도 하나 그 위에 얹혔다.

"아빠, 이거 먹어 볼래?

내 말 듣고 먹어 봐, 엄청 맛있어."

뭘 넣고 비볐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좋아할 만한 밥으로 보였다.

마침 FM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김장 김치와 어묵탕으로 내 저녁식사를 만끽하려던 참이다.

"강이야, 음악도 함께 먹어 봐.

더 맛있을 거야."

그때 흐르던 곡이 Buena Vista Social Club이 부르는 Chan Chan이었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쿠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파도치는 아바나의 해변가를 달리는 차들과 흑백이 어울리는 거리 풍경, 내가 모르는 쿠바는 카리브해의 진주처럼 영롱할까.

그곳에 가면 시가를 한 대 피워봐도 괜찮을까.

삶이 연주되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다니면 내 삶이 함께 연주될 것만 같다.

그 연주를 들어보고 싶은 나는 오늘 저녁밥도 벌써 맛있어졌다.

Chan Chan이라니, 그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기며 아르모니코를 연주하는 모자 쓴 할아버지 콤파이 세군도가 떠올랐다.

경쾌하면서 쓸쓸한...이라고 쓰는 시를 나는 아이에게 설명할 줄 모른다.

오뎅이 더 맛있긴 해도 어묵이라고 말해야 한다, 아가야.

"아빠, 어떻게 음악을 먹어?

음악도 먹을 수 있나, 그게 맛볼 수 있어?"

강이는 다 잊을 것이다.

아니 잊을 것도 없을 것이다. 아빠만 노래를 붙잡고 있었으니까...

그때 저 먼 나라 쿠바에서 불렀던 노래를 우리가 듣고 있었다.

강이가 자랑스러워하던 밥을 먹으면서 그런다.

"아빠, 나는 아직 음악까지는 못 먹겠어.

무슨 맛인지, 아무 맛도 안 나."

그래, 쿠바가 어디 가까운 곳이기나 하냐, 아빠도 영영 못 가볼 것 같은 곳인데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 수 있겠냐.

그런데도 아빠는 밥 먹을 때 자꾸 음악도 함께 먹고 싶은 거야.

가지 못하는 땅, 가지 못하는 시절, 가본 적 없는 삶의 공간과 시간이 많이 그리운 거야.

아빠는 그 반찬으로 밥을 먹는 거 같아.

Music, 즐거운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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