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꿀 수 있다면 / 박라연
다시 꿈꿀 수 있다면
개미 한 마리의 손톱으로 사천 오백 날 때쯤
살아낸 백송, 뚫고 들어가 살아보는 일
나무속에 살면서
제 몸의 일부를 썩이는 일
제 혼의 일부를 베어내는 순간을 닮아보는 일
나무속에 살면서
향기가 악취 되는 순간을 껴안는 일
다시 꿈꿀 수 있다면
제 것인 양 슬픔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누군가의 슬픔을 소리 낼 줄 아는 새가 되는 일
새가 되어 살면서
미처 못 간 길, 허공에 길을 내어주는 일
그 길을 또다시 잃어버리고도
개미 한 마리로 살아내게 하는 일
나무속에 살면서 새가 되어 살면서
축복은 神이 내리고
불운은 인간이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10년 전에 '직지'라는 이름으로 산사나이들이 원정을 떠났다.
히말라야 어느 계곡에서 직지 원정대 젊은이 둘이 정말로 먼 길을 떠났다.
그 둘이 거기 누워서 별을 되었을 때 서른아홉이었던 나는 스물아홉에 있었던 일들은 그만 만져보기로 했다.
아이도 생겨 누가 나무가 되었다거나 별, 간혹 그렇게 신문에 나왔던 이름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살았다.
꼭 10년 전에 추락한 사람들을 어쩌다 발견했는지 더듬더듬 만져보다가 '다시 꿈꿀 수 있다면' 소원한다.
그 마음으로 제를 올린다.
시 하나 적고 Nocturne 정도 틀어놓는다.
축복은 신이 내리고 불운은 인간이 만든다는 것.
미안하고 억울한 일인데 그 말이 맞다.
맞는 말 앞에 서면 휘파람이 난다.
바람이라도 나를 도왔으면 싶어 한창 모가 자란 들판에 나왔어도 꽉 막힌 숨과 땀, 모기떼가 승냥이처럼 덤벼든다.
미친,
이것들 다 히말라야에 갖다가 꽁꽁 얼어 죽게 내버려야 해.
담뱃불만 내 성깔을 버티어내느라 바싹 타들어 간다.
피식, 피시식
다시 꿈꿀 수 있다면
나는 됐고 그들에게 줘라.
보고 싶은 가족들에게 돌아갈 끈 같은 것을 내려주든지, 다시 또 꼭대기를 향해 기어이 올라갈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밥이라도 한 양푼 되지게 퍼주라.
그러다가 만년설을 베고 별을 보고 누웠던 밤들에는 어떤 눈물이 흐르던가라고 나지막하게 물어나 봐라.
그런 것이 되고 싶었노라고 무릎 꿇고 빌었던 날이, 나는 있었는가라고도.
축복은 신이 내리지만 곧 거둬가고,
불운은 인간이 만들어 꼭 덮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