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다 / 문태준

시의,

by 강물처럼


나는 내가 좋다 / 문태준




나의 안구에는 볍씨 자국이 여럿 있다

예닐곱 살 때에 상처가 생겼다

어머니는 중년이 된 나를 아직도 딱하게 건너다보지만

나는 내가 좋다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나의 눈이 좋다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괼 줄을 아는 나의 눈이 좋다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참 어려운 한마디

어디에다 적어본 적도 없는

메아리를 가져본 적도 없는

어쩌자고 이런 못난 사람일까

한숨밖에 나오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심해서 상대하기 싫더라도

이렇게 생겨먹은 데부터 살살

가을 햇살이 벚나무 이파리에 걸어오는 수작이

사브작사브작 간지럽다

익어가는 열감 熱感이 좋아서 만져보는

한 송이 남은 달맞이 노란 꽃

나는 '네가' 좋다

오래 서서 거기 해지는 데까지

좋은 거 그런 거 따로 없더라도

가진 게 그거뿐이더라도

나는 그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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