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80

아침에,

by 강물처럼


무엇인가 가리키는 표시로 사용하는 손입니다.


넌지시 저 손 모양을 따라서 해봤습니다.


다른 손가락들은 입장을 분명히 하는데 유독 엄지 하나가 제 위치를 찾지 못합니다.


검지에 나란히 붙였다가 어딘가 어색한 것 같아 눈을 감고 편안하게 다시 손을 쥐어봤습니다.


검지가 직선처럼 앞을 향했다면 엄지는 중지 위에서 살짝 몸을 구부리고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합니다.


몇 번을 다시 해보니 그 자세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면 재미날 것 같습니다.


날이 밝으면 우리 집 식구들도 시켜봐야겠습니다.


이럴 때 그림을 그릴 줄 알면 딱 좋은데 말입니다.


저는 그 손 모양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오늘 복음 말씀 가운데 어떤 대목이 저를 이쪽으로 이끌었을까요.


저 또한 궁금합니다.


늘 그렇지만 그 부분이 신선하고 새롭습니다.


어떤 기도가 어떤 묵상으로 전개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떠나는 길이 설레기도 한다면 믿으실까요.


물론 막막하고 답답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등과 손바닥이 있어야 비로소 손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런 맛이 있는 듯합니다.


음이니 양이니 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음양의 이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 가장 중요하고 유익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말이 그 말입니다.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음이 음으로 다하지 않고 양이 양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보듬는 말입니다.


그 순환은 단순히 타력에 의한 순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순환, 스스로의 변용까지도 그 세계에서는 주목합니다.


이진법이 컴퓨터의 기반이 되었듯이 음과 양의 이치는 우리가 아는 영역에서 그 역할을 마칠 만큼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손가락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엄지를 무지 拇指라고도 부르고 실제로 중국에서는 그렇게 씁니다.


어머니를 닮은 손가락이라고 쓴 저 이름이 제법 어울립니다. 키도 제일 작으면서 당당해 보입니다. 마치 넷을 엄마 혼자서 지키는 형상이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검지는 음식을 맛보는 손가락이라고 해서 식지 食指라고 쓰기도 하는데 서양권에서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일을 식지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pointer finger 가 됩니다. 물론 다른 이름도 몇 개 더 있기는 하지만 일이 사람을 대변한다는 문화에 비춰보면 그 이름이 가장 어울립니다.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아빠 같다고 해야 할지요? 하여튼 방향을 제시하고 두드러집니다. 그것으로 가리키며 가르치기도 합니다. 아는 것이 많은 것도 같습니다. 바쁘고 활동적이며 생산적입니다. 종횡무진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을 만큼 컴퓨터 자판 위에서도 검지는 특별히 더 일이 많은 것도 같습니다. 어지간하면 검지가 먼저 가서 해결합니다.



중지는 어디를 가든 중간 middle 이란 딱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명지 無名指라는 이름은 어딘가 슬픈 느낌을 간직하게 합니다. 우리는 약지라고 부르는 그 손가락은 언제나 새끼손가락과 함께 합니다.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가리킬 때, 사실은 그 안에 비난하다는 의미도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삿대질´ 이란 말로 불쾌함을 표시합니다.


실제로 영어에서도 stop pointing figer at me, 그러면 ´그만 뭐라고 하세요´라는 말이 됩니다.


비난을 멈춰달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손가락 하나가 타인을 가리킬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란히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리키고 또는 가르쳐야 할 때, 아니면 지적할 때라도 항상 그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주시합니다.


정말이지 새끼들 같은 동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저는 엄지손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고 싶습니다.


가야 할 길이 멀면 여러 가지 것들이 요동칩니다. 그래도 갈 거라면 엄지와 같은 동행이 필요합니다.


다들 일이 많고 수고롭습니다. 수고롭지 않으면 무엇하겠습니까.


둘 사이를 편하게 하는 일이 중심을 잡아줍니다. 걸어야 할 거리와 그 거리만큼 부족한 나는 갈등하기 쉽지만 엄지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에게 엄지가 되어주는 일이 내 사람됨을 나타낼 것입니다.


오늘은 엄지가 되어주는 말씀을 옮겨 적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오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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