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밥상머리 15

la creme de la creme

by 강물처럼

산이는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내가 자라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면이어서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나는 정말 '주는 대로' 먹고 자랐다.

이렇게만 말하면 조금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편이었고 또 그때는 먹거리 자체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별다른 불만이나 불평 없이 먹고 자랐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깝다.

그럼에도 산이처럼 '나 뭐 먹고 싶어.'라고 말해보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사람은 자기가 못해본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 동경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하이 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 나오는 '질투보다 동경이 나쁘다.'라는 말을 이 나이쯤 되니까 말갛게 이해할 수 있겠다.

나는 어느 때부터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을 하나의 성취라고 여기게 됐을까.

그것은 나에게 저절로 생겨난 감각이었을까, 누군가에게서 습득한 사실이었을까.

오늘 저녁에 우리는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별거 아닌 별거로 우리는 즐거워졌다.

우선 입부터, 그 책임지지 않는 입부터 우리는 달콤해지기 시작했다.

"아빠, 당뇨가 뭐야?"

무슨 말 끝에 당뇨라는 말이 나왔는지 더듬어봐도 거기까지 내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초로 初老의 길에 들어선 것을 이런 식으로 목격하고 곧 수긍하기로 한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굳이 머릿속에서도 힘들여 기억해 두지 않았겠지, 이 얼마나 간결한 스텝이며 가벼운 몸놀림인가.

앞장서서 늙어가기로 다시 마음을 먹는다.

대신 내 옆에서 푸르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으니까 썩 나쁘지 않은 구도다.

아직 온기를 잃지 않아 우리가 먹은 것들이 차갑게 식지 않을 동안에. 그 시간을 나는 마음껏 즐기기로 한다.

붉은 살이 설핏 보이는 소고기가 먹기 좋게 잘라져서 앞에 놓였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당뇨는 - 알지? 아빠가 전문가는 아니라는 거! - 내가 이 말을 했던가 아니면 생략했던가.

아, 잠시만 분위기 좀 내자.

이거 맛이 기가 막히다.


그런 말 들어본 적 있는데 여기에서 한 번 써먹어보기로 하자.

결국 다 잊히고 말 것이니까 그러기 전에 딱 한 번이라도 쓸 수 있어야 나도 보람이 있지.

the cream of the cream.

최고 중의 최고, 백미 白眉 중의 백미 白眉라는 말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 나가서 연설을 하며 저를 뽑아달라고 했던 내 스무 살의 첫 슬로건이었다.

역시 구호는 알맹이 없는 소리뿐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30년 전 과친구들에게 전한다.

무엇을 먹더라도 이렇게 둘러앉아서 먹는 맛이 최고다.

아빠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입안에서 고기가 구른다.

유치하더라도 조금만 참아라. 아빠가 뭐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닌데.

너희에게 다 일러주지는 못하지만 '먹는 일'이 얼마나 기막힌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아빠는 그것이 성스러울 지경이다.

맥주도 한 잔 따라서 조금씩 맛을 본다.

고기는 너희가 많이 먹어라.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배는 나중에 아파오니까, 괜찮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이 아니니까.

기분 좋게 맛있는 거 먹었는데 마무리를 잘해야지, 다 토해내면 그건 아니잖아?

나는 TV에서 보여주는 것 중에 꼭 하나 '먹방'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맛있는 것을 그렇게 먹는 것이 좋아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너희 같은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영 탐탁지 않다.

자본주의가 윤리적일 필요가 있겠냐고 묻던데 내 대답은 그렇다. 꼭 그래야 한다.

아니 그럴수록 더 그래야 한다라고 바꿔 말해야겠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모두 에너지로 바뀐다.

세상에 있는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심지어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일조차 자기 몫을 요구한다.

들어오는 것이 없으면 나올 것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처럼 모든 움직이는 것들은 매몰차다.

하지만 먹을 게 있으면 힘을 내고 그 힘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 살아가도록 살린다.

그래서 먹는 일은 중요하고 먹지 못하면 위험하다.

아이들이 아니 어른이라도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 '적절하게'라는 부사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바로 성인 聖人으로 수직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적당하게 먹는 일은 우리를 위해서 꼭 지켜야 할 일인데 너무나 허무하게 그 약속은 무너지고 만다.

봄날의 벚꽃처럼 흩어지는 연하고 무른 핑크색 다짐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 정도를 지켜내는 일이다.

먹는 일이 정도를 지키지 않으면 몸속 어딘가에서 그게 쌓여 결국은 처리비용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스스로 처리 기능을 작동시키지 못하면 돈을 들여서라도 처리하겠지.

그러다 비용이 감당되지 않거나 돈을 들여도 처리할 수 없게 되면 우리는 많이 심각해진 것이다.

모든 일이 비슷하더라는 내 말 기억하는지.

그래서 놀랍기도 하지만 삶이 단순할 수도 있을 거란 바람이 생겼다는 말도.

우리는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을 노력해야 해.

아무 생각 없을 때에도 나를 지켜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로 살려는' 그 담백한 사실이라는 것.

나는 나로 사는 일에 얼마나 알맞은지 묻고 살펴야 한다.

욕탕에 들어가듯이 말이지,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어디쯤에서 이 목욕을 즐기는 것이 좋을지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아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그것에 지혜와 용기와 신념으로 손을 넣어보고 발을 넣고 몸을 담그는 거야.

때로는 남거나 부족하겠지.

그때에도 움푹한 곳을 도와주는 흐름이 있으니까 평소에 너그럽고 적당하길 바란다.

남은 것은 반드시 남을 돕는 데 사용하길 당부한다.

두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명심해 준다면 아빠는 매우 고마울 거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날부터 한 삼사 일 지난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병원에 다녀왔으니까.

병원에 가서도 벚꽃이 핀 뒤쪽 산책 길에 자주 올라가 봤다.

때를 알고 피는 것들과 지는 것들은 모두 고요하더라. 그래도 충분히 화음을 이루는 것 같아 보였다.

색이 소리를 연주하고 빛이 색을 도우니까 찬란하더라.

적절한 것은 맛있고 용기 있고 보기 좋아서 내가 꼭 너희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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