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그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그 노래는 함성이다.
바람이고 소원이며 부르짖음이다.
노래를 못 불러도 가슴이 알아서 부르는 노래다.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투쟁´이란 말이 서늘하게 식었습니다.
아니면 색이 바랬거나 그것도 아니면 동음이의어처럼 다른 느낌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바뀌고 사람도 말도 변했습니다.
그것도 흐름일 것입니다.
살면서 한 번도 ´투쟁´ 해본 적 없는 나는 투쟁하는 이들에게 빚이 있습니다.
투쟁은 자기의 삶을 밖으로 꺼내 보이는 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장이나 간장처럼 그것을 꺼내 손에 들어 보이며 살아있음을 외치며 그것으로 세상과 맞서는 일,
삶을 ´증명하는´ 일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투쟁할 때 연애를 했으며 그들이 차린 밥상에 슬그머니 앉아 먹을 것을 챙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투쟁가 鬪爭歌를 더 이상 듣지 못합니다.
투쟁마저 사랑이었던 사람의 부고 訃告를 적습니다.
나는 그녀를 세상이 부르듯, 노동, 민중, 문예 운동가로 부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현이´가 좋습니다.
그녀를 추모하는 노래들이 울리는 듯합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그 천사 같은 음성을 들으면서 하늘을 내다봤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이야기, 매스컴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더듬거렸습니다.
작년 이맘때 간신히 봤었던 얼굴이 하늘에 비쳤습니다.
보고 싶어서 서울에서 보령까지 찾아왔던 아이, 성인이 된 딸이 있는 엄마, 노래하는 사람, 어릴 적 친구.
장작불을 가운데 놓고 보냈던 몇 시간이 얼마나 편안했었는지 모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그 밤은 앞으로도 나와 친구들이 현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꺼내 볼 순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도 생각납니다. 우리 반에 다른 여학생은 생각나지 않는데 현이는 기억합니다.
5학년 현이는 세례를 받습니다. 그 사진이 지금도 우리집에 있습니다.
6학년 현이는 성심학교에서 열린 성가대회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성가 제목은 ´기쁜 나의 집´, 그날 불렀던 그 노래가 내가 기억하는 현이의 가장 오래전 목소리입니다.
지난 3년간 현이에게도 아침 묵상이 매일 찾아갔습니다.
쓸 수 있고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다고 봐주는 그 아이가 나도 고마웠습니다.
할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면 많은 것들을 보여줬을 것입니다.
투쟁을 아름다운 노래로, 노래와 같은 삶으로 보여줬을 것입니다.
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는 ´사랑의 송가´입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도 울리는 징과 같네.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37
노래로 사람을 깨우쳐 줬던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격이 있고 율이 있으며 음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마 마지막 인사는 써지지 않지만 친구여서 많이 고마웠고 고맙습니다.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불렀던 노래를 나지막이 불러봅니다.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https://youtu.be/1PAVCaNf_1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