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중간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시험은 제 고유의 영역을 지키는 위엄과 품위가 있습니다.
철부지, 장난꾸러기들도 시험을 치를 때마다 성장합니다.
사람을 떠보는 일, 유혹 같은 것도 시험이고 실력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도 시험이라고 부릅니다.
별개인 듯 보이는 이 두 개의 시험은 끝에서 서로 마주칩니다.
결국 ´시험´을 이겨내거나 잘 치르면 선물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선물은 바로 한 단계 발전된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시험의 진짜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발전´을 바라보는 우리들 각자의 시선은 사뭇 다릅니다.
지위나 신분의 향상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며 성찰이나 각성을 성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시험은 사람을 ´시험하며´ 제 본분을 다합니다.
시험 때가 되면 사춘기 아이들이 자기 프라이드를 갖도록 응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상대의 성적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기쁨의 정도를 정하는 것이 자존심이라면 자존감은 스스로의 가치를 먼저 헤아릴 줄 알고 그것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그 둘은 무엇보다도 ´인정´의 자세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자존심은 어쩔 수 없다거나 여전히 ´상황´ 중심이지만 자존감은 ´자기´를 돌아보면서 더 나은 ´다음´을 다짐합니다. 하나 더 팁을 드리자면, 자존심으로 다져진 아이에게는 자기 실수란 말이 없습니다. 그것을 말하기 주저하고 힘들어합니다. 언제나 주변을 탓합니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와서, 배가 아파서, 책을 놓고 와서, 깜박 잊어버려서, 심지어는 신호등이 늦게 켜져서... 그런 것입니다. 문제가 틀려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잘못 봐서, 딴생각해서, 심지어는 계속 3번만 답이어서라고 그럽니다. 정말 듣고 싶은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진료받으러 앞에 앉아 있는 환자가 자꾸 병을 감추는 것은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존심은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좋아하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남보다 더 잘하는 자기는 피곤하니까 전보다 더 나아진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훨씬 쉽고 위험하지도 않다며 설득시킵니다. 그래도 그새 어른들을 닮아버린 아이들은 옆을 힐끗거리는 일이 잦습니다.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맙니다. ´크게 한 건´이 못 되는 것들은 점점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합니다. 언제까지 시험만 보며 살아갈 것인지요. 그 시험들은 자신 있는지요.
시험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시험을 내는 사람 입장에 서면 어떤 문제를 내야 할지 잘 떠오릅니다.
문제를 정말 열심히 푸는 우리는 조금 서러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삶은 어떤 문제로 이루어진 시험지일까.
그것은 과연 시험이었을까.
그 시험은 누구를 위한 누구의 시험이었을까.
나는 어떤 응시자였을까.
맨 나아종 질문이 거기 있을 것만 같습니다.
* 시 한 편을 같이 보냅니다.
사제 김재문 미카엘의 묘
1954 충남 서천 출생
1979 사제 서품
1980 善終
천주교 용산교회 사제 묘역
첫째 줄 오른편 맨 구석 자리에 있는 묘비석
단 세 줄로 요약되는
한 사람의 生이 드문드문
네모난 봉분 위에 제비꽃을 피우고 있다
돌에 새겨진 짧은 연대기로
그를 알 수는 없지만
스물다섯에 사제복을 입고 다음 해에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젊음이
내게 이 묘역을 산책길의 맨 처음으로 만들었다
창으로 내려다보면 커다란 자귀나무 가지에
가려진 그 아래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어떤 사람들의 生이
숫자들을 앞세우고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들의 삶을 해독하는 데
한나절을 다 보낸 적도 있다
그는 이 묘역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다
그의 죽음이 봄날을 오래 붙들고 있다
- 조용미, ´용산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