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67

아침에,

by 강물처럼

금요일에는 몸과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은 ´불금´이지만 나는 ´휴금´입니다. 휴식 같은 금요일.


해야 할 일이야 다른 날과 같지만 우선 마음이 놓이는 것은 금요일이 가진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 여유가 누군가에게는 ´쉼´으로 다가오고 또 ´불´처럼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고향은 같은! 마치 한 줄기에서 뻗어 나는 나뭇가지들이 연상됩니다.


어떤 가지가 되고 싶었던가, 이왕 생각이 난 김에 그 길을 쭉 따라가 보기도 합니다.


새들이 한 번쯤 앉아다 가는 그런 것이고 싶었을 겁니다. 왜 이렇게 옛날 사람처럼 회상적인지 저도 모르면서 우선 적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뭇가지에 앉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축축하게 내리는 비가 있을 테고 이슬이나 서리 같은 것도 때가 되면 내릴 것입니다.


저는 달빛을 떠올렸습니다. 고고한 달빛이 물보다 맑게 비치는 가을밤에 잠들지 못하는 나뭇가지라.


저는 또 떠올립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것들이 떠난 자리를, 그 여운, 그 ´진동´을.


학교에서 배운 물리가 맞는다면 진동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되고자 했던 나뭇가지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먼 일을 회고하듯 그랬던가 봅니다.


떨림을 간직하고 있는 정지 停止.



한 글자로 된 말들에는 생각보다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본질적이고 자연에 가까우며 먼저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분위기가 나는 말들입니다.


해, 달, 별, 땅, 물, 불, 흙, 산, 강, 책, 글, 손, 발, 눈, 코, 입, 숨, 돈, 병, 열, 기....


바로 적어봤는데도 스무 개는 그냥 넘습니다.


한 글자로 된 것들은 무척 품이 넓습니다. 아마 평생을 갖고 다니면서 사색하더라도 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편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가벼움을 느끼고 따라 하며 배우고 싶어 합니다.



기사를 보고 아시겠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트라우마를 겪은 피해자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표하고 싶다."라며


"그렇게 오랫동안 이 문제를 방치한 교회의 무능력함은 나의 수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프랑스 가톨릭 교회의 성 학대 독립조사 위원회의 교회 내 성폭력 보고서를 보고 언급하신 겁니다.



정치가 시끄러울 때는 정치를 외면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다가도 사람 살아가는 데 정치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어,


또 돌아서서 다시 마음을 잡고 누군가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합니다. 더 좋은 사람이어야 할 것을 덜 나쁜 것으로 위안 삼는 일이 상식이 되고 마땅해지면 어떡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틈이 바로 ´누구나´ 그런 거 아니겠냐는 얄팍한 상술 商術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기 마련인 ´물론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 같은 그런 말.


그런 말을 교묘히 써먹는 당사자와 제3자들로 이 세상은 짜 맞춰진 것은 아닌가 싶을 때, 나뭇가지도 되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이 용서받기 위한 전제가 되거나 용서의 모체가 되는 이 거울 속의 거울 같은 현실을 종교는 구분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자기 역할을 잊고 현실에 같이 섞여 흔들리면 그야말로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은 것이 기우 杞憂에 지나지 않기를 또한 바랍니다. 훌륭하게 살다 가신 분들과 살아오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루카 11:26



가을밤에는 달을 봐야 합니다.


나뭇가지는 그 달을 볼 줄 압니다.


나뭇가지는 손가락 같은 것은 아예 모릅니다.


달 가듯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것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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